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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일어나자마자 버스터미널로 달려가 리장행 버스표를 산다. 12시표. 숙소로 돌아와 빈둥거리며 창 밖을 찍는다. C 10-1 C 10-2 버스터미널로 간다. 버스에 오르니 좁아터진 침대버스다. 12시간 걸리는 줄 알았더니 24시간이 걸리나 보다. 자리를 잡고 누우니 예상대로 길이가 짧다. 많은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올라 눕는 탓에 버스 안에 발 냄새가 진동한다. 거기에 세월의 냄새를 간직한 이불까지 가세한다. 쉽게 마비되는 후각 신경세포에 감사한다.

리장이 꽤 유명한 관광도시라 외국인 여행자 하나 둘 정도는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겨울이라서 인지 모두 현지인 들이다. 대각선 앞자리에 있던 여자 둘이 말을 걸어온다. 당연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이상한 건 분명 중국인처럼 생기고 중국말을 하는데 한자를 읽지 못한다. 한참 서로 딴소리 대화를 하고 내린 판단은 이들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자들인데 오랜만에 고향으로 가는 중국 내 소수민족 중 하나라는 것이다.

정황1. 옷차람이 나름 세련됐다. 2. 친구라고 보여주는 핸드폰 속 사진들의 인종이 다양하다. 3. 화려한 매니큐어를 하고 있다. 4. 난징(난징학살로 유명한 상하이 근교의 번화한 도시)에서 일을 한다. 5. 아는 한국말이 ‘안녕하세요. 오빠. 뽀뽀’다. 6. 중국말이 아닌 전혀 새로운 언어를 구사한다.

그릇된 편견이 작용한 것일 수 있겠으나 위의 정황과 그 밖에 작은 것들을 포함해 내린 ‘난징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소수민족'은 나름 타당하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친구들이 자기들과 같이 내려 집으로 가자고 한 것이 우릴 고민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이 친구들이 리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리장가는 길 중간. 쓰촨성 남부에 있는 ‘시창'이란 곳에서 내린다는 것이다. 우린 리장까지 가는 버스 요금을 지불했고 비자기간은 3주가 남았다.

고민1. 리장으로 가려고 지불한 버스비와 다시 리장으로 가는 비용이 아깝다. 2. 새로운 뜻밖의 인연을 만나는 것도 좋지 않을까? 3. 얼마나 머무를 수 있을 것이며 비자 기간은 가능한가? 4. 무슨 호의를 받을 것이며 그들의 동네서 뭘 할 수 있는가? 5. 소수민족의 삶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등등…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었으면 당연히 O.K를 외쳤을 가능성이 크다. 여유가 전혀 없었어도 마찬가지. 어정쩡한 상태는 모험심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드는 법이다. 우선 판단을 보류하고 그 친구들이 내릴 때를 지켜보기로 한다. 지난번처럼 자전거 화물비 비싸게 달라는 걸 돈 없다며 지갑에 있는 돈을 다 털어줘서 돈을 꺼낼 수 없어 굶고 있으니 이 친구들이 우리에게 삶은 계란과 저녁을 사준다. 뭘 보고 우리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지 모르겠다. 호의를 의심하는 건 좋지 않지만 여행자들에게 이유 없는 호의는 경계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런 호의가 우리를 한발 더 다가가게 하지만 고민만 쌓일 뿐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사실대로 말하면 이 친구들이 훌륭한 미모의 소유자들이었다면 모험심 게이지가 급상승 했을 거라는 거다. 니들은 뭐 그리 잘랐냐 라고 묻는다면, 여성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수컷이라는 것들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