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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자전거를 보니 뒷 바퀴 바람이 빠져있다. 어제 저녁까지 이상이 없었다. 론니 플레닛을 보면 윈난 아이들이 장난이 심해 자전거 바퀴에 구멍을 내는 일이 있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펑크를 떼우려 하는데 타이어에 흔적이 없다. 펑크가 났다는 건 날카로운 무언가가 타이어를 뚫고 튜브에 손상을 입힌 것이기 때문에 펑크 패치를 붙이기 전에 타이어에 남아있는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게 우선이다. 타이어에 그 원인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건 누군가가 일부러 구멍을 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침 빈관 주인집 아들내미도 못 돼먹 게 생긴 놈이라 가뜩이나 잦은 고장에 짜증나 있던 차에 왕꿀밤을 한대 먹이려다 증거 불충분으로 참는다. 식당아저씨가 권하는 물 담배 한 모금 빨며 분을 삼킨다. C 26-1한참을 달리는데 사람들이 모여있길래 무슨 일인가 봤더니 그 가운데 효일이가 허리를 잡고 앉아있다. 급정거. 앞서가던 효일이가 차와 가벼운 접촉사고를 당한 듯하다. 잠시 후 자리를 털로 일어났지만 나의 사고 이후 얼마 안돼 일어난 일이라 적잖이 걱정스럽다. C 26-2나도 마찬가지였지만 효일이 또한 일어나자마자 자전거를 걱정한다. 지금 우리에게 자전거는 한 몸과 다름없는 소중한 것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자전거 먼저 걱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좀 서글프다. 자전거 여행자의 비애라 할 수 있다.

다시 출발. 둘이 함께 달리다 보면 서로 그날의 컨디션이나 체력, 스태미나가 다르기 때문에 우린 한 사람에게 맞추기보다 자기의 페이스대로 달린다. 그러다 보면 심하게는 수 km를 떨어져 달리게 된다. 국내여행 경험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전기를 구입했다. 어차피 목적지는 같고 한 시간마다 휴식을 가져서 웬만하면 무전기 쓸 일이 없다. 오늘은 효일이가 한참을 앞서 달리고 있었다. 나는 뒤에서 따라가고 있던 입장이라 적당한 시간에 효일이가 쉬고 있는 곳에 멈춰서 쉬다 다시 출발하면 되는 건데, 두 시간이 넘도록 효일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GPS를 갖고 있어서 효일이는 앞서 달리고 있어도 갈래길에서는 기다리고 있는데, 여러 갈래길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달리고 나서 이건 아니다 싶어 멈춰서 무전기를 켠다. 아까부터 중국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서 그냥 혼선이다 싶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오전의 사고도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했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기에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든다. 뒤로 돌아 효일이가 시야에서 사라진 시점까지 달리면서 온갖 생각을 다 한다. 그렇게 10여km를 달리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달려오고 있는 육중한 자전거. 효일이임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 내린다. 효일이가 멈춰 자전거 상태를 보고 있던 와중에 나는 오르막을 오르느라 힘들어 땅만 보고 지나쳐가서 서로 앞뒤가 바뀐걸 몰랐던 거다. 효일이는 효일이 나름대로 내가 너무 안 오자 뒤로 돌아가고… 아무튼 서로 탈이 없어 다행이다.

중국비자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안 좋은 사건들이 연일 일어나니 빨리 이곳을 뜨고 싶은 생각이 든다. 쿤밍에 도착해 국경으로 가는 버스를 알아본다. 버스 터미널에 다가가자 조그만 까까머리의 아저씨가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며 어디로 가느냐 묻는다. 삐끼들은 대게 허당이지만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기에 따라가 본다. 알아보니 어차피 우리가 타야 할 공식 버스를 소개한다. 버스 비는 정해져 있으니 그렇다 치고 자전거 화물비가 문젠데 우리 수중엔 중국 돈이 얼마 없다. 깎고 깎아서 간신히 오늘 빈관비 정도를 남긴다. 밥 먹을 돈이 없다고 하자 자기집으로 가잖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뒤따라 가는데 이 아저씨의 캐릭터가 범상치 않다. 뭔가에 쫓기는 듯한 빠른 걸음걸이에 쉴 새 없이 말을 걸고 혼잣말을 한다. 집에 도착하니 슬램가의 아파트 같은 침대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는 방이다. 무슨 밥이 나올까 걱정스러웠는데 맛이 좋은 전골 같은 요리가 나온다. 돼지 등뼈를 삶은 육수에 야채와 두부 등을 넣고 건져먹는 요리였는데 고기국물은 이미 여러 번 재탕한 듯 하다. 이번에도 역시 고기는 절대 건드리지 않고 야채와 두부만 건져먹는다. 네버엔딩푸드다. C 26-3

그 아저씨 이름은 ‘왕하'인데 밥을 먹는 와중에도 계속 혼잣말을 하고 다리를 떤다. 신경쇠약증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배불리 잘 먹는다. 우리가 돈이 없다는 표현으로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잘 거라 했더니 밖은 춥다며 우리를 안내해 준다는 곳이 다름아닌 24시간 ATM기 부스다. 거기까지 데려다 주고 자전거 잘 잠그고 자라며 돌아간다. 좀 어이가 없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가진 것 없어 바라볼 것도 없는 우리에게 버스도 알아봐주고 화물비도 깎아주고 밥까지 대접해준 것 보면 따뜻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너무 쉴새 없이 떠들고 흔치 않은 캐릭터라 신기하게만 바라봤지 왕하아저씨가 대접해 준 것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했다. 어리석게도 그 사람의 모습만 봤지 본성을 보려 하지 않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정말 신기한 사람이었다.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 같은… 이상한 나라의 왕하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