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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우리는 좀 쉴만한 곳만 찾으면 간단히 맥주 한잔씩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아직 여행 초반 우리 대화의 주된 내용은 다름 아닌 블로그에 대한 얘기다. 간단히 시작했던 처음과 달리 일이 커지면서 컨텐츠를 만드는 일이 그리 간단히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꼬박 컴퓨터 앞에 앉아 씨름하고 있어야 하니 가끔은 여행을 떠나서 왜 이러고 있나 싶을 때가 있다. 6년 전 첫 배낭여행을 갔다 온 후 다음엔 작은 카메라도 들고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내 시선을 자꾸 카메라에 빼앗기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캠코더와 노트북까지 보태졌으니 그런 생각이 안들 수 없다. 효일이는 벌써 블로그를 폐쇄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토로한다. 나와 같은 생각에서 나온 불만이다. 하지만 이미 우린 너무 멀리 와 버렸다.  Epilogue 1이런 상황은 당연히 우리 스스로 만들었다. 이 여행은 나에게 인생의 가장 큰 모험이다. 세계일주 여행자의 주된 충고는 여행 후 3개월에서 6개월간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예비금을 마련해 두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떠날 수 없는 여행이었다. 우린 이 여행을 터트려야 한다. 많은 장기 여행자들이 꿈꾸는 일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들고 시작했다. 영문 블로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제외하면 꽤 좋은 무기들을 갖고 있다는 자체진단이다. 무기가 많아서 좀 버겁지만 하나만 버려도 시너지가 사라지니 어쩔 수 없다.Epilogue 2

컴퓨터 앞에서 씨름 하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적어도 남의 입맛에 맞출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이명세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그가 이런 얘기를 했었다.

“대중은 어려워. 알 수가 없어. 카프카를 봐 . 걔가 잘 팔리는 글을 쓰려고 한 게 아니잖아. 그런데도 인기가 있잖아. 자기하고 싶은 데로 해야 돼. 대중은 고려할 필요가 없어.”

다른 사람을 신경 쓰면서 일을 했다면 벌써 지쳤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만들어 내는 글과 사진과 영상이 서서히 지인이 아닌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 흐믓하다. 그들의 한마디는 우리가 잘 해내고 있다는 증표 같은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의 결론은 항상 같다. 블로그도 중요하고, 우리 미래도 중요하고,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도, 스폰서도 다 중요하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여행만 놓치지 않고 쥐고 있으면 된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건 우리의 여행 그 자체, 그것만 잊지 말자.Epilogue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