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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bia
Scott

차가 움직여 잠에서 깬다. 차가 움직여 할 시간인가 보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온다. 차가 좁아 다리를 웅크리고 잤더니 몸이 찌뿌둥하다. 밥을 먹고 출발.

산중의 경치가 멋지다. 숲 속에선 온갖 잡새와 원숭인지 오랑우탄인지 모를, TV 다큐멘터리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동물들의 울음 소리가 울려 퍼진다. C 11-2하지만 좋은 자연 경치는 언제나 엿 같은 길과 한 세트다. 이제 내리막이 계속 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마음의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맞이한 오르막은 더 힘이 든다. 내리막도 너무 가파르고 커브가 많아 신나게 내려올 수가 없다.C 11-4 고도 900m 가까이 내려오는 길을 세 시간이나 걸려 힘들게 내려온다. 여러모로 내리막 자격이 없는 길이다.       

하지만 그건 약과였다. 갑자기 나타난 비포장길. 비포장길이라기 보다 길을 내긴 냈는데 수 백년 전에 만들어진 후 한 번도 손을 보지 않은 듯한 길이다. 그냥 비포장길이면 땅에 박힌 돌이 다 지만, 시멘트에 자갈 버무려 만든 길이 다 헤집어져 있으니 자갈밭이나 다름없다. 말이 좋아 자갈이지 앙증맞은 동그란 자갈이 아니라 주먹만한 돌덩어리들이다. C 11-3그런 노면에 경사 큰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 내려올 땐 자전거가 쿵쾅쿵쾅, 오를 땐 바퀴가 헛돌고 난리가 아니다. 인도네시아 그래 니가 라오스를 이겼다.

우리의 고생은 둘째 치고라도 차도 다니기 힘들만큼 유실된 길을 손도 안 쓰고 있는 걸 보니, 연말마다 예산 소비하느라 멀쩡한 도로 뒤집어 까는 우리나라의 행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돈 모아 이런데 원조 사업하면 좋을 텐데… 언제쯤 부유한 이의 낭비가 부족한 이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 부의 분배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모두가 바라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길을 세 시간 정도 더 달리자 드디어 세상 누구에게라도 ‘이게 길이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길다운 길이 나온다. 라오스 이후 험한 길 주행이 없어서 몸이 힘든 것도 힘든 건데, 자전거가 걱정스럽더니 급기야는 앞 짐받이가 부러진다. 뒷 짐받이는 웬만한 자전거 샵에서 구할 수 있어서 좀 덜한데 앞 짐받이는 정말 구하기 힘든 장비다. 대충 임시방편 해 놓았지만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제발 싱가포르까지만 가자.C 11-5

아침 일찍 출발한 덕에 한 타임을 더 달리니 이제서야 메인 도로가 나타난다. 수마트라를 대각으로 구불구불 종단하는 도로. 그래 봐야 왕복 2차선 도로지만 노면 상태는 좋다. 그것만으로도 반갑다. 날이 어두워져 두리번거리다 교회를 발견하고, 텐트 허락을 받는다. C 11-6C 11-7텐트를 치고 샤워를 하며 하루에 묵은 때를 씻어 낸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