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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 있는 세계 최대의 호수 토바로 가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1,200m가 넘는 해발 고도가 맘에 들지 않았고, 계속해서 비가 내렸고, 페달이 고장 나 오르막이 더 힘들게 느껴졌다. 오르막 길에선 체력 소비가 크기 때문에 서로의 간격을 맞출 여유가 없다. 그렇게 각자의 페이스대로 움직이다 보면 컨디션에 따라 수 km까지 벌어지곤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멀리 떨어진 채 혼자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부슬비가 내리고, 그 보다 더 많은 땀이 온 몸을 적히는 가운데 가끔 지나치는 자동차는 좁은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자전거가 귀찮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고 지나간다. 큰 화물차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면 깜짝 놀라 휘청거리면서 길을 벗어났다가 도랑으로 빠질 뻔 하기도 한다. 다시 자전거를 곧추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는 빽빽한 숲 속 산길에서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된 몸으로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는 한 자전거 여행자가 보일 뿐이다. 비가 나무잎사귀를 때리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 옆 도랑을 타고 흐르는 빗물 소리 그리고 나의 거친 숨소리. 갑자기 외로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나 지금 이 여행에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pilogue 1대학교 시절, 영화 찍는다고 며칠 밤을 새면서 악전고투한 적도 있지만,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몸을 내 던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무엇이 나에게 이런 의지를 주고 있는 것일까?

난 그 의지의 원천을 일기장에서 발견한다. 개방형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라는 걸 무의식 중에 감안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나름 모든 걸 솔직하게 써내려 가고 있다. 그 일기에는 3~4일이 멀다 하고 ‘즐겁다'는 서술어가 등장한다. 여행 떠나기 전 쓰던 일기장에는 과연 이 말이 몇 번이나 등장할까? 고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올라 되 내어 보건 데 많은 부분이 ‘즐거운'이 아닌 ‘즐겁기 위한'에 대한 기록일 것이다. 원하던 방식의 차이가 있을 순 있겠지만 그 때의 ‘즐겁기 위한' 삶이 오늘의 ‘즐거운' 삶이 되어 다행이다. 얼굴에 주름살이 깊게 패일 때까지 ‘즐겁기 위한' 삶을 살지 않아도 돼 다행이다.

내 여행 계획을 들은 한 선배는 “여행 끝나면 죽어도 되겠다.” 라는 답변으로 이 여행의 가치를 높여주었다. 또 다른 한 선배는 “갔다 와서 뭐 하려고 그러냐.” 라는 답변으로 이 여행의 무모함을 지적했었다. 이 여행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이 여행의 끝은 중요하지 않다. ‘즐겁기 위한’이 아닌 ‘즐거운'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여행에서의 하루가 아닌 인생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있어 만족스럽다. Epilogue 2

그래 그럼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