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간단한 입국 절차를 마치고 싱가포르에 발을 딛는다. 우리를 처음 맞는 건 엄청나게 쏟아 붓는 폭우. 고가도로 아래서 비를 잠시 피하고 다시 시내로 들어간다.
잘 사는 나라라 그런지 고급차는 많이 보이는데 양보의 미덕은 보이지 않는다. 21세기형 선진국이니 어쩌니 해서 깨끗하고 밝은 이미지가 그려지지만, 흐린 하늘에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하며 무단 횡단하는 사람도 많은 게 결국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싶다. 싱가포르에선 길거리에서 담배도 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이유를 만 원돈 하는 담뱃값에서밖에 찾을 수가 없다. 몇몇 엄격한 법이 과대 포장돼서 싱가포르의 이미지가 그렇게 그려지는 것 같다. 그럼 그렇지... 그런 강한 규제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며, 그게 무슨 선진국이라 할 수 있나. 융통성이란 언제나 고려돼야 하는 가치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우리나라 모 선박운송업체 사무실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상선을 얻어 타고 바다를 건너볼 생각이었는데, 도착해보니 이거 원 많은 경비에, 카드출입시스템이 있는 고급스러워 뵈는 건물이라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어설프게 말도 못 꺼내고 퇴짜를 맞느니 좀 더 계획을 세우기로 하고 일단 후퇴. 근처 은행에서 돈을 뽑고 밥을 먹는다.
싱가포르 물가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이라 하던데 과연 다른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밥값이 4~5천원 돈이다. 현재 환율로 말레이시아 1링깃은 370원 정도, 1싱가포르달러는 860원 정도다. 거의 두 배반의 차이가 나는데 내는 돈의 숫자는 말레이시아에서 내던 것과 같다. 웬만하면 먹을 땐 먹자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자제가 필요한 순간이다. 담뱃값은 너무 비싸서 당분간 어절 수 없이 금연을 해야 할 것 같다.
연락해둔 웜샤워 친구에게 전화를 해 보지만 어제 오기로 했던 우리의 일정이 바뀌어 자기는 다른 곳에 있다며 다른 숙소를 권한다. 기름때에 먼지에 비까지 맞은 몸에선 노숙자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또 달린다. 어딘가에 도착해서 잠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나고 짜증이 난다.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어서 여행자를 위한 숙소도 별로 없어 더 그렇다. 물어 물어 도착한 작은 골목엔 클럽 둬 개와 도미토리 하나가 있다. 이태원을 100분의 1이상으로 축소해 놓으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곳이다. 시간도 늦었고 몸도 피곤하고 선택의 여지도 없어 일인당 22싱가폴달러(약 19,000원)나 하는 16인실 도미토리의 침대를 잡는다. 대도시에선 숙소를 따로 잡은 적이 거의 없어서 더 비싸고 아깝게 느껴진다. 남의 집에 잘 얹혀 자다 보니 숙박비가 기본 경비가 아니어서 타격이 크다.
짐을 풀고 나와 맥주 한 잔. 맥주는 상대적으로 정상가다. 방도 구했겠다. 몸도 개운하겠다. 이럴 때 마시는 맥주는 정말 최고다. 여기선 언능 볼일보고 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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