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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bia
Scott

일어나 호스텔에서 제공되는 토스트와 커피를 마신다. 물가가 비싸니 싱가포르의 여행자 숙소는 모두 이런 간단한 아침이 제공되는 도미토리 시스템인 것 같다.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온다. 싱가포르에 들어온 이후로 되는 일도 없는데다 날씨도 좋지 않아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비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 샵으로 걸어간다. 6km가 넘는 거리다. 펑크 난 타이어는 좌, 우로 왔다 갔다 삐걱삐걱 소리가 난다. 무엇보다 발바닥이 아프다. 익숙한 이 쓰라림. 군대 전역하고, 그것도 일병 때까지만 볼 수 있었던 발바닥 물집이다. 13년 만에 생긴 발바닥 물집이 어제, 오늘의 고됨을 말해주고 있다.

자전거 샵에 도착. 효일이를 만난다. 서로 어제 있었던 일들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는다. 싱가포르가 싫어진다. 담당자를 만나 자전거 체크 목록을 건네니 일거리가 많은 듯 주말은 바쁘고 월요일에 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공임은 무료로, 부품비는 할인가가 될 거라는 말을 넌지시 건넨다. C 3-1공임이 비싼 나라라 그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모두 무료로 가능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었는데, 이렇게 되면 정말 필수적인 부품만 바꿔야 할 것 같다. 기대한 데로 되는 게 없는 나라다.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끝난다. 연락해 둔 웜샤워 친구가 퇴근하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C 3-2호커센터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담배도 땡기고, 커피도 땡기는데 도저히 지갑을 열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일 축구 보며 맥주 한 잔 할까 싶어서 본 기네스 두 병 세트 할인가 8.8싱가포르달러로 중국에서 양진비어를 사면 자그마치 20병을 마실 수 있다. 이러니 프롤레타리아 계층에서 막스를 품에 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처럼 다양한 시도와 수정, 보완을 한다면 사회주의는 여전히 매력적인 정치이론이다.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상선회사에 전화를 건다. 한국 사람이 있어 우리의 얘기를 하니 컨테이너선에 타려면 일정한 선원교육을 받아야 하기도 하거니와 자기네 회사에서는 선원 가족을 제외한 일반인의 승선을 불허하기 때문에 힘들 것 같다고 한다. 이대로 상선타기 시도는 끝날 것 같다. 멋진 계획이라 생각했는데 아쉽다.

적당히 시간이 된 것 같아 웜샤워 친구 집 근처로 이동한다. 일이 바쁜지 좀 늦겠다는 연락이 온다. 기다리는 동안 식당에서 축구를 보며 밥을 먹는다. C 3-3앞에서 통닭과 함께 맥주를 쌓아놓고 마시는 할배 둘이 부럽다. 부잔가 보다.

잠시 후 웜샤워 친구인 해놀드가 온다. 젊은 친군지 알았는데 꽤 연장자인 아저씨다. 아저씨를 따라 집에 가니 방을 하나 내주는데 책상도 있고 인터넷도 되고 샤워실도 있고 아주 좋다. 다만 처음부터 아저씨는 2~3일 정도만 생각하고 있는 듯 하고, 성격이 좀 예민한 것 같아 어떻게 이 기간을 늘리느냐가 문제다. 쉬운 일이 하나도 없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