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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월드컵은 스페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한국인으로서 한국대표팀이 16강에 올라 즐거웠고, 축구팬으로서 네덜란드와 스페인이 결승에 올라 기뻤다.

축구란 스포츠를 즐기기 시작한 때부터 난 네덜란드 대표팀의 열렬한 팬이었다. 토탈사커라는 이름으로 공격지향적인, 상대 팀보다 ‘한 골 더’가 아니라 가능한 ‘한 골 더’를 외치며 돌격하는 그들의 축구에 매료된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승리라는 결과만이 아닌 승리를 얻어내는 과정까지 중요하게 여긴 네덜란드 축구를 사람들은 아름다운 축구라고 말하기도 한다. 토탈사커라는 아름다운 축구를 발명한 70년대부터 이번 월드컵 전까지 네덜란드는 한 번도 그 기조에 벗어난 축구를 하지 않았고, 그래서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도 단 한 번의 유럽컵 밖에 들어 올리지 못했다.

누구나 승리를 원한다. 한 번도 월드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던 네덜란드는 이번 월드컵에서 그들의 축구를 버리고 실리 축구를 구사했다. 그래서인지 네덜란드 대표팀은 내가 그들의 축구를 응원한 이래로 가장 수준이 떨어지는 선수구성으로 결승까지 올랐다. 네덜란드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결과를 위해 소신을 저버린 그들이 원망스럽기보다 안타까웠다. 아이러니한 상황은 그들의 결승전 상대였던 스페인이 (스페인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크루이프를 통해 토털사커를 전수받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축구를 구사하는 팀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은 네덜란드보다 더 집요하게 아름다운 축구를 고집하며 결승에 올랐다.

전반적으로 스쿼드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네덜란드는 정말 훌륭한 실리 축구를 구사했다. 점유율 싸움에 지면서도 더 좋은 결정적 기회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연장전에서 네덜란드 코치진은 결정적인 실수를 한다. 최후방 수비수(데용)와 최전방 공격수(반데바르트) 교체라는 전형적인 그들의 방식, 아름다운 축구의 전통이 그대로 녹아있는 선택을 한 것이다. 결국, 경고 누적이 많았던 네덜란드는 또 다른 수비수를 퇴장으로 잃고, 부족한 수비라인 속에서 이니에스타는 자유롭게 슛을 할 수 있었다. 패배의 원인이었지만 그 교체는 네덜란드의 자존심이었고, 아름다운 선택이었다.

‘지지 않기 위한’이 아닌 ‘이기기 위한’, ‘결과’만이 아닌 ‘과정’까지 놓치지 않고 손에 쥐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거칠고, 단순한 축구라는 스포츠에서 ‘아름다운’이란 수식어는 그들의 경기 자체가 아니라 경기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칭송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이가 결과에 대한 두려움에 ‘성공하기 위한’이 아닌 ‘실패하지 않기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보면, 이건 어쩌면 축구가 아닌 삶에 비추어 더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나는 지금 삶이라는 그라운드에서 어떤 자세로 경기에 임하고 있는가? 자신의 방식대로 앞으로 나아가며 플레이를 하고 있는지, 뒤로 물러서서 실리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는지.

전문가들은 스페인의 우승으로 현대축구의 흐름이 바뀌리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카펠로가 여전히 잉글랜드 대표팀을 맡고 있는데? 무리뉴가 환호하는 모습을 4년 동안 봐야 할 텐데? 축구의 흐름이 아름다운 축구의 방식으로 바뀌기 위해선 사람들의 생각부터 변해야 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결과만큼 과정을 중시한 시대는 없었다. 그런 소수에게 박수만 보냈을 뿐이다. 그러므로 스페인의 우승에 박수는 보내겠지만 그 방식을 따라 할 일은 절대 없다.

내가 주목하는 건 네덜란드의 선택이다. 자존심을 접고 구사한 실리 축구로 자신들의 것이었던 아름다운 축구에 진 네덜란드의 다음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네덜란드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스페인이 그 모습을 유지하기 바란다. 그리고 그들이 아름다운 축구로 승리를 거둘 때, 그들을 향한 박수가 승리만을 위한 박수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57625972RM418_Final_Italy_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