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Plan Korea
Columbia
Scott

피곤했는지 단잠을 잤다. 점심에 데리러 온다는 핫산이 오지 않아서 점심약속은 그냥 지나가듯 한 말인가 보다 하고, 라주가 준비해준 라면을 끓여 먹는다. 좀 있으니 핫산과 웜샤워 멤버인 모함메드가 온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C 2-1모함메드는 깔끔한 차림의 지식인 같은 모습이다. 핫산은 우리가 늦게 일어나서 저녁약속으로 바꿨다며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좋다 하고 나선다.

날씨가 무지 덥고, 혼란스런 도로와 경적소리가 다시 눈 앞에 펼쳐진다. 오토릭샤를 하나 잡아탄다. C 2-2무법질주. 어딘가에 내려 걷다가 작은 노점상에서 차를 한 잔 마신다. 이렇게 차를 파는 노점이 많은데 갈길 가다가 잠깐 멈춰 앉아 쉬며 차 한잔 먹는 모습이 이채롭다. 흔히 커피 한 잔의 여유라고 하는데, 이 밀크티 한 잔의 여유가 혼란스런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지혜가 아닌가 싶다. C 2-3

차를 마시고 좀 더 가니 어제 만났던 핫산의 삼촌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한 건물에 들어가 맥주를 사려하는 것 같은데 왠지 비밀스런 거래처럼 보인다. 무슬림 국가인 이곳에선 술을 구하기가 힘든가 보다. 이곳도 외국인에게만 술을 파는 곳인데 핫산의 삼촌이 큰 손이라 이곳 사람들도 잘 아는 것 같다. 맥주 한 캔에 반값에 사서 90타카(약 1,500원)인데, 술을 자유롭게 마시는 사회적분위기가 아닌 만큼 전반적인 물가에 비해 굉장히 비싸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한 박스를 사서 차에 싣고 식당으로 이동한다.

한국 식당을 찾는데 핫산이 알고 있던 한국 식당이 없어졌나 보다. 몇 군데 더 있다고 하는데 비도 오고 해서 그냥 근처에 중국 식당으로 간다. 역시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인데 가라오케가 딸린 룸에 자리를 잡는다. 500~600타카(약 8,000원~9,500원) 정도하는 요리 몇 개를 시켜 먹는다. 어제 핫산을 기다리며 먹은 주먹 반툼만한 도너츠 같은 게 10개에 20타카(약 320원) 했으니 이 식당의 요리가 여기선 굉장히 비싸다 할 수 있다. C 2-4

맥주와 요리를 먹으며 흥이 붙자 삼촌의 여동생이 노래를 부른다. 앨범 두 장을 낸 가수였다고 하는데 과연 음악으로만 들었던 간들어지는 인도 풍의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른다. 그리고 또 한 여자분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전문 댄서라는데 과연 엉뎅이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즉석에서 펼쳐지는 공연이 흥미로웠는데, 삼촌의 계속하라는 강요 아닌 강요로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핫산의 삼촌은 사업가보다 조직 보스 같은 느낌의 사람이어서 목소리도 크고 다혈질이다. 모함메드가 하는 얘기로 추측해보면 우리가 묶는 곳은 방글라데시내 여행관련 사업가들와 그 부류들의 모임을 위한 공간이고, 삼촌이 일종의 재정적 배경이어서 모두 삼촌이라 부르는 것 같다. 사람들이 좀 취하고, 삼촌은 계속 춤추라고 하고, 댄서 아줌마는 싫은 내색을 하면서도 춤 추기 시작하면 몸놀림 예사롭지 않고, 그럼 삼촌은 댄서 아줌마에게 돈 던지고…

아랍의 밸리댄스는 춤을 추면 (거의 가 남자들일)구경꾼이 허리춤에 돈을 찔러줘서, 허리춤의 돈이 달려 흔들거리는 모습이 전통이 돼 지금의 악세사리 많이 달린 밸리댄서 복이 된 걸로 알고 있다. 아마도 춤추는 여자에게 돈을 던져주는 게 이곳에서도 일종의 전통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같이 즐기며 박수치고 환호하기엔 이질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한국에서 아는 사람이 그랬다면 한 마디 했을 테지만, 이들의 문화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휘하는 나만의 정의감은 오히려 꼴분견일지도 모르니 그냥 나와 담배 한 대 핀다. 곧 자리가 파한다.

계속 신사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모함메드는 사람들이 취해서 그러니 이해하라며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간다. 모두들 집에 가고 핫산과 우리는 삼촌의 차를 타고 집으로 온다. 집에는 라주가 쓸쓸히 집을 지키고 있다. 술에 취한 핫산이 라주에게 맥주 심부름 시키려는 걸 말리고 집으로 보낸다. 즐겁기도 하나 난감하기도 한 저녁이었다. 그래도 오늘의 자리가 우리를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는 건 잊을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