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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늦잠쟁이였던 나도 이제 9시면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일찍 자긴 하지만… 대충 씻고 나와 짐이 없어 가벼워진 자전거를 타고 은행을 찾는다. ATM을 찾아 돈을 뽑는다. 수수료가 얼마나 나오는지 알 수 없지만 몽골은 환전도 그렇고 ATM도 수수료가 굉장히 적은 걸로 알고 있다.

밥을 먹고 여행자 인포메이션을 찾아 카메라 수리점과 자전거 수리점을 묻는다. 자전거 수리점은 따로 없고 20대 초반에 젊은 애가 배낭에 수리 공구를 넣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방문 수리를 하는 식이다. 자전거 상태를 보고 지금은 바쁘니 저녁에 만나자고 하고 헤어진다. 카메라 수리점은 어느 건물 지하에 있는 조그만 공간에 한 아저씨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클래식 카메라를 고치는 조그만 수리점의 모습과 다르지 않는데 별로 신뢰가 가지는 않다. 비슷한 문제로 한국에서 3만원에 고친 걸 8만5천 투그릭을 달라고 해 안 고친다고 하니 바로 7만원으로 가격을 정정한다. 역시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냥 나와서 사인샨드에서 만난 제기가 소개 시켜준 친구 진섭이에게 연락을 한다. 

한 시간 뒤 진섭이를 만나 그의 사무실로 간다. 진섭이는 한국에서 중고차나 그 밖에 중고 물품을 수입해 파는 일을 하고 있다. 잠시 업무를 보고 잠시 시골에 가자며 우리와 같이 울란바토르 외곽으로 간다. 자기 동생이 집을 짓고 있는데 감시를 안 하면 일꾼들이 일을 안 한다고 보러 가는 거라고 한다.

울란바토르 외곽으로 빠지니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넓은 초원과 언덕이 있고 강물이 흐른다. 강물은 그냥 먹어도 된다고 할 정도로 깨끗하다. 몽골에서도 잘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외곽에 집을 지어놓고 여름엔 이곳에서 사는 것 같다. 이 초원이 푸르러지면 훨씬 더 멋질 것 같다. C 9-2

목적지에 도착하니 넓은 울타리안에 게르 두 개와 공사중인 터가 있다. 게르 하나는 일꾼들이 지내는 곳이고 하나는 일을 봐주는 그의 삼촌이 혼자 지내고 있다. 게르 안에 들어가 보니 나름 운치있고 좋다. 몽골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는 너무 춥고 비자 기간은 길고 해서 진섭이에게 한 달 정도 지낼 월세방 같은 곳을 물어보려던 차였다. 우리가 게르의 분위기를 맘에 들어하자 그럼 그냥 이곳에서 지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 도심의 월세방에서 지내는 건 솔직히 별 의미가 없다. 수도 시설이 없어 강물을 떠다 써야 하고 난로를 피워 난방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몽골에 왔으니 이런 곳에서 지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건 몽골 행을 결정하고부터 꿈꿔왔던 거다. 게다가 방세도 없어졌으니 최상의 시나리오가 됐다. C 9-3

맥주를 잔뜩 사 들고 근처에 있던 진섭이 부모님의 여름 집에 가서 마신다. 진섭이는 몽골에 경찰 학교를 다니다 1년을 남기고 한국에 가서 4년 동안 일을 했다고 한다. 꽤나 부유한 집에서 나름 괜찮은 직업인 경찰을 포기하고 한국에 와서 한 일들은 건물철거, 이삿짐센터, 호텔 서빙등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진섭이는 한국에서의 힘든 노동을 자신이 성장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의 한국이름 ‘진섭'을 얻게 된 과정은 이렇다. 호텔에서 서빙을 볼 때 그곳의 매니저였던 분이 지어준 것인데, 그 분이 오래 전 어린 아들을 잃어 그 이름을 진섭이에게 붙여주고 아들처럼 대해줬다고 한다. 자신도 아버지라 부르며 지냈는데 자기의 한국 아버지가 주먹 꽤나 쓰는 쪽에 종사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유도 없이 자기에게 그렇게 해 준 걸 보면 착한 사람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그 분의 친절을 받고 자기도 나중에 몽골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잘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그 친절을 우리에게 베풀고 있는 것이었다. 선행이든 악행이든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곳곳으로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 큰 배움 하나를 얻는다.

이제 우리도 그 친절의 연결고리가 될 의무를 갖게 됐다. 이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의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