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Plan Korea
Columbia
Scott

밀크 티 한 잔 마시고 하루를 시작한다. 수자이와 아침 먹으러 근처 작은 식당에 간다. 이 지역의 주요 아침 메뉴라는 걸 먹는다. 삶은 감자와 라면 부스러기 같은 과자, 양파, 토마토를 잘게 썰어 담고 커리 국물을 섞어 비벼 먹는 요리다. 모닝빵도 주는데 빵이 촉촉한 게 맛있다. 빵 만드는 기술은 우리나라가 한참 모자란 듯 싶다. C 8-1

수자이는 내일 아침 일찍 아빠도 뭄바이에 가고 자기도 일 나간다고 오늘 저녁에 게스트하우스로 옮겼으면 한다. 그냥 혼자 있어도 된다고 하고 싶지만, 수자이의 성격은 못 챙겨주고 혼자 집에 두는 게 불안한 거다. 알았다고 하고 돌아와 잽싸게 뿌나에 있는 카우치서핑 멤버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뿌나는 꽤 큰 도시라 카우치서핑 멤버는 많은데 반해 주요 관광지가 아니다보니 수요보다 공급이 많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 시간 안에 네 명에게 연락이 온다. 수요, 공급의 불균형도 있지만 이제 나의 여행 경력이 어느정도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기에 답변이 잘 오는 편이다. 그 중 기차역과 수자이 집에서 가까운 한 친구에게 연락을 취해 놓는다. 그리고 여유 있게 받아놓은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

5시쯤 집에 돌아온 수자이에게 감사의 기념품을 건네자 집안 구석구석 뒤지더니 작은 향수를 찾아 답례한다. 내 생애 두 번째 향수. 무슨 허브 오일 향수라는데 뚜껑을 열어 맡아보니 인도라는 나라를 농축해 향을 뽑아내면 이런 냄새가 아닐까 싶은 향수다. 태어나서 향수 뿌려본 적 한번도 없는데 그것도 인도향이라니. 그래도 향기 좋다며 기본 좋게 받는 게 또 예의 아닌가.

짐을 들고 나가 자전거에 견착하는 동안 아파트 주민이 몰려든다. C 8-2수자이와 아빠에게 인사를 하고 카우치서핑 멤버의 집으로 향한다. 그 친구의 이름은 어쉰이다. 조카하고 영화 보기로 했다며 8시에 보자 했다. 기다리는 동안 밥이나 먹을까 싶어 두리번거리며 식당을 찾다가 골목길에서 Non-Veg 간판을 발견하고 들어간다. C 8-3가격이 좀 비싸지만 수자이 덕에 이틀 동안 한 푼도 안 썼기에 큰 맘먹고 머튼탈리를 시킨다. C 8-4원래 닭보다 소, 돼지고기를 좋아하지만 양이나 염소고기는 생소해서 꺼렸었는데 이젠 맛있게 먹는다. 네발 달린 짐승이 더 맛있는 법. 손님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이상한 몰골의 외국인 손님이 신기했는지 지배인과 종업원이 쑥덕거린다. 맛있게 밥을 다 먹자 사장이 나와 악수를 청하며 귀한 손님이니 자기가 대접한다고 한다. 이런… 술집에서 주는 공짜 술, 밥집에서 주는 공짜 밥은 얼마나 큰 호의인가. 실컷 인도 욕해주고 있는데 이런 대접을 받게 되다니… 어떤 이미지든 그것이 달리 보이게 되는 계기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기 마련이다. 기념품과 인사를 건네고 나온다. C 8-5

약속장소에서 어쉰을 만난다. 배 고프다며 바로 식당으로 간다. 바 같은 곳인데 좀 어린 놈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고 있다. 우리도 맥주를 한 병씩 먹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죄다 남자다. 갓 성인이 된듯한 부잣집 아들놈들이 어른 행세하고 있는 모양새다. 담배 피는 자세가 영 안 나온다. 개중에 반은 입 담배고, 어디서 봤는지 담배를 돌려 피고 앉았다. 자식들…

어쉰은 하와이에서 살았는데 거기서 일본, 중국, 한국, 필리핀 애들 상대로 영어 선생님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말을 잘 들어준다. 이들 아시아 4개국이 하와이 인구의 거의 반을 차지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미국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서양인 상대할 때의 느낌이다. 좀 쿨한 성격이다. 난 전혀 쿨하지 않지만 내 의도와 상관없이 꽤 쿨해 보이기 때문에 쿨한 사람 상대하는 게 편하다.

간단히 맥주를 한 잔하고 집으로 들어온다. 집 참 지저분하다. 그래도 넓고, 내가 지낼 방이 따로 있으니 좋다. 여기는 단수도 되지 않는 것 같아 더 좋다. C 8-6

슬슬 저녁에도 더위가 느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