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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아침을 해먹고 정리하면 이미 점심이다. 그래도 할 일이 없으니 조바심도 없다. 따뜻한 날로 앞에서 가만히 멍 때리고 있다가 너무 늘어지는 것 같아서 간단한 영상 하나 만들어 보려고 콘티를 구상한다. 우리의 게르에서의 생활을 그린 영상이 될 거다.

저녁이 되자 진섭이와 그의 친구들이 몰려온다. 오늘은 진섭이의 생일이다. 좁은 게르가 사람들로 북적인다. 친구들 중에는 진섭이가 한국에 있을 때 같이 지내던 친구들도 있어서 몇 몇 친구들과는 우리말로 대화를 나룰 수 있다. 사람들이 다 모이자 며칠 전부터 대기하고 있던 염소를 가지고 요리가 시작된다.

머리와 내장이 제거된 염소 내부에 마늘을 넣고 며칠 간 둔다. 아마 냄새를 없애려는 듯 하다. C 14-1그리고 당일 날 다리 부분을 남겨두고 마늘과 갈빗대 나머지 살코기를 잘라내서 빼두고 그 안에 달군 돌과 감자, 소금 그리고 해체했던 살코기를 다시 차곡차곡 집어 넣고 목 부분을 묶는다. C 14-5 C 14-2그리고 모닥불과 가스 토치를 이용해 겉 부분 털을 태워 긁어낸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양을 같은 방식으로 요리하면 내부가 부풀어 올라 터진다고 한다. 그래서 이 요리는 염소만을 이용한다고 한다.C 14-3

털을 긁어내는 과정에서 내부의 고기와 야채가 다 익는다. 그리곤 배를 갈라 살코기와 갈빗대, 그리고 아직 붙어 있는 고기들을 칼로 잘라 손으로 뜯어 먹는다. 달궈진 돌을 넣어 놨었기 때문에 구운 고기맛이 나고, 내부에서 육즙에 의해 쪄졌기 때문에 야들야들 삶은 고기의 맛도 느낄 수 있다. C 14-4 론리 플래닛에서는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몽골에서 대접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요리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달군 돌을 동물 뱃속에 넣고 한다는 묘사가 바로 이 요리를 말하는 듯 하다. 요리의 맛은 반듯이 먹어 봐야 하는 진미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에겐 잊지 못한 소중한 맛이었다.

만찬이 끝난 후 모두 울란바토르로 향한다. 역시나 2차는 음주였는데 다량의 맥주와 보드카 한 병이 추가된다. 보드카는 각자의 잔으로 먹지 않고 술을 먹지 않는 한 사람이 잔에 따라 한 사람씩 건네고 받고를 반복하며 마신다. 잔을 받는 사람은 주량만큼 마시고 술을 따라주는 사람에게 다시 잔을 주는데 마신 후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면 안 된다. 그리고 술을 따라주는 사람은 잔이 빈 만큼 다시 채워 다음 순서 사람에게 잔을 준다. 술을 못 마시면 안 마시면 된다. 그리고 첫 잔은 약지로 술을 찍은 후 하늘을 향해 손을 털고 이마에 술을 찍는데 조상에 대한 공경의 표시라고 한다. 이 의식은 남자들만 하는 것 같다. 나름 특별한 날이라 몽골에서 두번째로 좋다는 ‘소엠보'라는 보드카를 마셨는데 39.5도라는 돗수가 무색하게 부드럽게 잘 넘어간다. 그래도 독한 술이라 술자리가 끝났을 땐 정신을 잃고 말았다. 효일이 말에 의하면 앞으로 꼬꾸라졌을 정도로 심각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주량을 넘어 설 만큼 먹은 건 아니었는데 그 동안의 피로와 긴장이 풀려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적당히 해야겠다.

3차는 노래방으로 향한다. 이미 모두들 취할 만큼 취한 상태라 흥청망청. 이런 모습은 어디나 똑같다. 한국말을 하는 친구들은 친한 친구들끼리 그러하듯 욕을 주고 받는데 ‘씹새끼'를  ‘십새기'라고 발음하니 욕같이 않고 오히려 귀엽다. 갈 시간이 되자 모두들 취해 운전할 사람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정신을 차린 후 노래방에서 술을 안 마셨던 내가 진섭이의 차를 운전해 그의 사무실로 간다. 운전할 일이 있을까 싶어 면허증을 안 만들어 왔는데 정신을 차렸다고는 하나 졸지에 음주 운전을 하게 됐다. 이곳은 운전석이 한국차는 왼쪽, 일본차는 오른쪽 그대로인 중고차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일본차인 진섭이의 차가 좀 생소했지만 다행히 몽골도 우측통행이고 늦은 새벽이라 도로에 차가 없어 무사히 사무실에 도착한다. 진섭이의 집을 몰라서 이쪽으로 왔는데 진섭이는 인사불성이다. 하는 수 없이 차에서 눈을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