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놓은 장작이 없어서 불을 많이 때지 않고 잠을 잤더니 꽤나 추운 새벽이었다. 때문에 잠도 많이 깨고 침낭을 완전히 뒤집어 쓰고 자느라 좀 답답한 밤이었다. 평소보다 좀 일직 잠을 깼지만 여전히 할 일은 없다. 어제 남겨놓은 누룽지를 끓여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다. 설거지를 하러 가는 김에 캠코더를 들고 가서 촬영도 하고 뒷산에도 올라가 본다. 눈 덮힌 마을 전경이 멋지다.돌아와 보니 일꾼들은 여전히 놀고 있다. 감시하는 사람이 없으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이곳의 통념이다. 이래서야 언제 집을 다 지을지 모르겠다. 우리와 다른 상식이라도 다 같이 그 상식 속에서 살아간다면 이들끼리는 별 트러블이 없을 것이다.
아직 활자에 대한 배고품이 적어 책 읽기를 아껴두고 있었는데 너무 할 일이 없어 효일이가 가져온 책을 읽어버린다. 책이 가벼운 물건이었으면 여행은 훌륭한 독서 시간이 될 텐데 아쉬운 일이다.
일꾼들이 이제 안면이 좀 익었다 싶었는지 순서대로 와서 담배를 달라고 한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지들끼리 웃고 하는 게 좀 짜증이 나려던 참이었다. 계속 웃음을 보여줬더니 만만해 보였나 싶어 좀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었더니 자기들 게르로 돌아간다. 가만히 있어도 화난 사람 같다는 소리를 듣는 인상이니 그 의도를 충분히 이해했으리라 생각된다.
삼촌이 치통을 심하고 앓고 있어 우리가 저녁을 한다. 맛난 걸 하고 싶지만 재료가 마땅치 않아 꽁치통조림으로 찌개를 끓이고 감자를 볶는다. 꽁치찌개에 고추 가루를 너무 넣었는지 우리는 맛있다고 신나게 먹는데 삼촌은 밥 몇 술 뜨더니 만다. 이제 우리에게 저녁을 맡기는 일은 없을 듯 싶다. 미안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좋은 작전이다. 세상 사는 게 다 이런 거지… 라고 말하면 좀 그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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