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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bia
Scott

주인 아저씨가 없어서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는 아들내미와 인사를 하고 주유소를 떠난다. C 49-1오직 첫 타임만 달릴만하다. 첫 타임이 끝난 후부터는 엄청난 양의 물을 먹어대며 달려야 한다. 여전히 속이 좋지 않다. 짜빠띠는 고사하고 단 음료도 싫다. 견과류 두유로 아침을 퉁 친다.

힘들게 오전 타임을 마치고 한 가게에서 준 물이 너무 시원해 앉은 자리에서 1.5리터를 비운다. 딱해 보였는지 새 물을 한 통 더 갖다 주며 돈 받지 않겠다고 한다. C 49-2얼굴은 그을릴 때로 그을렸고 수염도 지저분한데다 이틀 넘게 과일 몇 조각밖에 먹지 않아 많이 말랐다. 동정은 동정이고 이제부터가 문제다. 언제나 12시가 넘는 시점부터 4시까지는 미치도록 괴롭다. 햇볕과 지열이 양 방향에서 때리고 먹은 게 없어 몸에 힘이 없다. 머리가 띵하다. 이 시간은 피해야겠다 싶어 쉬고 있으면 주변에서 불어오는 히터바람이 괴로워 이럴 바엔 달리는 게 낫겠다 생각하고 다시 달리면 이거 안되겠다 싶어 또 멈춘다.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데 갑자기 비포장길이 나온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엄청난 먼지가 일고 아무리 힘을 주고 달려도 큼직한 자갈 때문에 핸들이 휘청거린다. C 49-3힘은 힘대로 들고 속도는 전혀 나지 않는다. 이러다 쓰러지는 거 아닌가 싶다.

어느 주유소에 멈춘다. 먹은 것도 없는데 설사는 계속 나온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게 뭐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 아심이 주었던 미군 전투 식량을 꺼낸다. C 49-4베지터블 라쟈냔데 오랜만에 먹는 토마토 소스가 입맛을 당긴다. 따로 소금이 있길래 소금도 좀 찍어 먹는다. 염분도 많이 부족한 상태일거다. 뭐라도 먹으니 좀 정신이 드는 것 같다. 주유소 아저씨가 25km에 있는 도시에 퀘타로 가는 기차가 있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이제 고민할 것도 없다. 육체의 한계가 판단의 영역에 들어서게 되면 머리는 어떻게든 몸이 편한 쪽으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다만 오늘은 늦었으니 도시에 들어서기 전에 하루 밤을 자고 내일 아침에 역에 가봐야겠다.

10km를 달리니 마침 적당한 주유소가 있어 멈춘 후 음료수 하나 마시며 주변 사람들과 노닥거린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걸 보고 경찰이 온다. 여권 검사. 본부하고 한참 교신을 하더니 여기서 자면 안 된다고 경찰서에 가잖다. 나야 어디든 상관없다. 경찰서에 가니 사람들끼리 의견이 분분해 이러쿵저러쿵하다 결국 나와 자전거를 차에 싣는다. 이 동네는 위험하니 안전한 곳에 데려다 주겠단다. 아니 난 그냥 내일 기차 타고 갈거라 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나 상관없이 지들끼리 이미 결정한 사항이고 번복은 없다. 어쩔 수 없이 차에 실려 20km 정도를 가니 또 다른 경찰차가 기다리고 나를 넘겨 받는다. 각자 관할지역 끝에서 끝으로 이동시켜주는 것이다. 그렇게 나를 바통 삼아서 총 일곱 번 차를 갈아 태운다. 피곤해 죽겠고 짜증난다. C 49-5자전거를 내리고 싣는 것도 짜증나지만 새 경찰차를 탈 때마다 쏟아지는 똑같은 질문에 계속 답해주는 게 미칠 노릇이다. 어찌됐건 그렇게 100km를 넘게 실려와 어느 경찰서에 도착한다. GPS를 체크해보니 뭐야 이거! 내가 가려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달려온 거다. 이 동네는 시골동네라 퀘타가는 기차도 버스도 없단다. 너무 화가 나서 왜 날 여기로 데려왔냐 물으니 지들은 모르겠단다. 그냥 인수인계만 받아온 거다. 펜을 들어 지도를 그려가며 난 여기서 기차를 타려 했는데 니들이 기차 없는 반대방향으로 데려왔다. 어떻게 책임질 거냐 물으니 난감해하며 여기저기 연락을 취한다. 이미 12시가 넘은 시각. 내일 해결해 주겠다며 우선 자란다. 나도 그렇고 싶다. 너무 피곤하다. 물은 잘 나와 시원하게 샤워를 하니 그제서야 경찰들과 농담 따먹기가 나온다.

생각해보면 첫날 1km를 돌아가기 싫어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게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원인이다. 그때 제대로 갔으면 설사병도, 길을 헤맬 필요도 없이 예정대로 움직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 작은 귀찮음이 여행을 이렇게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에서의 결정은 얼마나 신중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무서운 나비효과를 경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