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어떻게 잤는지 모르겠다. 와~ 이 동네 진짜 덥다. 경찰이 갖다 준 빵 쪼가리로 아침을 먹고 기다린다. 경찰이 출근하기 시작해 어제 담당자를 만나서 버스 타게 해달라고 조른다. 그랬더니 이 경찰은 너무 쉽게 알았다고 하면서 이 근처에 퀘타가는 미니 버스가 있으니 알아봐준다고 한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경찰마다 대응이 다 다르다.
잠시 기다리니 가자고 하면서 자전거와 짐을 경찰차에 싣고 3km 정도 가서 봉고차 앞에 선다. 북적거리는 시장 통에서 사람 꽉 찬 봉고차 위에 짐을 싣고 난 앞 좌석에 낑겨 앉는다. 어쨌든 이제 이걸로 한 방에 간다. 경찰과 인사를 나누고 출발.
사람 가득 찬 봉고차는 찜통이다. 열어놓은 창문에선 히터 바람이 들어온다. 나를 싣고 다닌 모든 경찰차도 그랬는데 고장이 난 건지 기름값이 아까운 건지 여기 차들은 에어컨을 절대 틀지 않는다. 고약하다. 지역이 지역인지라 도로에 인적도 뜸하고 가게도 잘 나오지 않는다. 이런 길을 자전거로 달렸다면 그야말로 죽음이다. 두어 시간 후 차는 산으로 진입한다. 내가 자전거 그만 타야겠다고 결정한 이유 중 하난 퀘타의 고도가 1,700m가 넘는다는 것도 있었다. 더 이상 악조건이 추가되는 걸 견딜 수 없었다.
마치 영화 속 외계행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산을 달리고 있는데 이곳에도 흙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참 대단하다. 인간은 정말 독한 생물이다. 어느덧 창 밖에서 숨쉴만한 바람이 들어온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기온이 좀 떨어졌나 보다. 시원함이 느껴지는 걸 보니 체온 정도되는 기온일 듯 싶다.
퀘타에 도착한다. 버스 정류장이 퀘타 중심에서 좀 벗어나 있어 자전거에 오른다. 떠나기 막판에 연락이 된 카우치서핑 친구의 주소를 사람들에게 물으니 계속 외곽으로 알려준다. 퀘타가 발루치스탄주의 주도이긴 하지만 큰 도시는 아니다. 인터넷이 된다는 건 도시 중심일 가능성이 큰데 주소를 물어볼수록 도심에서 멀어지니 긴가민가하다. 게다가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친다. 날이 서늘해서 비가 차다. 자동차 쇼룸이 있어서 비를 피하려 들어가니 공교롭게도 이곳이 내가 찾던 주소다.
일하는 직원에게 카우치서핑 친구 이름을 말하니 전화를 연결해준다. 전화로 인사를 한다. 지금 밖에 나와 있으니 잠시 기다리라 한다. 파키스탄인걸 감안하면 좋은 차가 많다. 사무실도 깨끗하고 에어컨도 나온다. 잠시 후 친구가 오고 근처에 있는 집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무지 넓은 방을 내 준다. 방이라 하기엔 너무 넓어 물어보니 옆집이 가족들과 사는 집이고 이 집은 손님을 맞는 집이라 한다. 넓은 공간이 몇 개가 있는데 한 곳에 적어도 30명은 잘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는 나 혼자다. 사업을 하는 친구이다 보니 무슨 행사 같은걸 할 때 쓰는 집인 듯하다. 어쨌든 좋다.
샤워를 하니 파키스탄 사람들이 입는 파자마 같은 옷을 내준다. 처음 입어보는데 헐렁헐렁해서 편하다. 긴 팔에 긴 바지라 더워 보였는데 그렇지도 않다. 역시 옷은 그 지역의 옷이 그 지역에 최적화 돼있다. 난데없이 배구를 하러 가자고 해서 간다. 가끔 배구를 하고 노는 사람들을 봤었다. 쇼룸 직원들과 뒤뜰에 있는 간이 코트에서 군대 이후로 처음 배구를 한다. 기본기만 있으면 배구는 상당히 재미있는 스포츠다. 허나 이곳 사람들은 기본기가 없다. 무조건 넘기기 바쁜 전형적인 막 배구다. 그래도 오랜만에 하는 공놀이라 조금은 재미있다.
배구가 끝나고 무나바르와 그의 친구와 함께 밥을 먹으러 간다. 뭐 먹고 싶냐 묻길래 혹시나 해서 누들스프를 먹고 싶다 했더니 온 도시를 헤집으며 중국식당을 찾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누들스프는 못 찾고 닭고기 스프만 포장해서 친구들이 가는 식당으로 간다. 똑같은 짜빠띠와 양고기 커리지만 가격이 좀 되는 데라 맛은 좋다. 아직 속이 잘 받아들이지 않지만 국물과 같이 먹으니 먹을만하다.
늦게까지 떠들다 들어오면서 밤에 TV 좀 볼 수 있나 묻는다. 버스를 타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오늘밤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무나바르는 기꺼이 문 닫힌 쇼룸을 열고 집에서 리시버를 갖고 와 스포츠 채널을 연결해 준다. 그리곤 옆에서 이불을 펴고 잔다. 축구엔 관심이 없나 보다. 세계가 열광하는 이 경기를 혼자 조용히 시청한다.
아~ 바르샤는 너무 강력하다. 내가 축구를 알기 시작한 이례로 이런 절대 강팀은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아마츄어 입장에서 봤을 때 바르샤를 꺾을 가능성이 있는 팀은 독일 국대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축구로는 절대 못 이긴다. 완벽하다 완벽해.
놀라운 경기를 보고 에어컨이 나오는 쇼룸 쇼파에서 이불을 덮고 잔다. 이불을 덮는 게 너무 생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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