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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어떻게 잤는지 모르겠다. 와~ 이 동네 진짜 덥다. 경찰이 갖다 준 빵 쪼가리로 아침을 먹고 기다린다. 경찰이 출근하기 시작해 어제 담당자를 만나서 버스 타게 해달라고 조른다. 그랬더니 이 경찰은 너무 쉽게 알았다고 하면서 이 근처에 퀘타가는 미니 버스가 있으니 알아봐준다고 한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경찰마다 대응이 다 다르다.

잠시 기다리니 가자고 하면서 자전거와 짐을 경찰차에 싣고 3km 정도 가서 봉고차 앞에 선다. 북적거리는 시장 통에서 사람 꽉 찬 봉고차 위에 짐을 싣고 난 앞 좌석에 낑겨 앉는다. C 51-2어쨌든 이제 이걸로 한 방에 간다. 경찰과 인사를 나누고 출발.

사람 가득 찬 봉고차는 찜통이다. C 51-1열어놓은 창문에선 히터 바람이 들어온다. 나를 싣고 다닌 모든 경찰차도 그랬는데 고장이 난 건지 기름값이 아까운 건지 여기 차들은 에어컨을 절대 틀지 않는다. 고약하다. 지역이 지역인지라 도로에 인적도 뜸하고 가게도 잘 나오지 않는다. 이런 길을 자전거로 달렸다면 그야말로 죽음이다. 두어 시간 후 차는 산으로 진입한다. 내가 자전거 그만 타야겠다고 결정한 이유 중 하난 퀘타의 고도가 1,700m가 넘는다는 것도 있었다. 더 이상 악조건이 추가되는 걸 견딜 수 없었다.

마치 영화 속 외계행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산을 달리고 있는데 이곳에도 흙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C 51-3참 대단하다. 인간은 정말 독한 생물이다. 어느덧 창 밖에서 숨쉴만한 바람이 들어온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기온이 좀 떨어졌나 보다. 시원함이 느껴지는 걸 보니 체온 정도되는 기온일 듯 싶다.

퀘타에 도착한다. 버스 정류장이 퀘타 중심에서 좀 벗어나 있어 자전거에 오른다. 떠나기 막판에 연락이 된 카우치서핑 친구의 주소를 사람들에게 물으니 계속 외곽으로 알려준다. 퀘타가 발루치스탄주의 주도이긴 하지만 큰 도시는 아니다. 인터넷이 된다는 건 도시 중심일 가능성이 큰데 주소를 물어볼수록 도심에서 멀어지니 긴가민가하다. 게다가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친다. 날이 서늘해서 비가 차다. 자동차 쇼룸이 있어서 비를 피하려 들어가니 공교롭게도 이곳이 내가 찾던 주소다. C 51-4

일하는 직원에게 카우치서핑 친구 이름을 말하니 전화를 연결해준다. 전화로 인사를 한다. 지금 밖에 나와 있으니 잠시 기다리라 한다. 파키스탄인걸 감안하면 좋은 차가 많다. 사무실도 깨끗하고 에어컨도 나온다. 잠시 후 친구가 오고 근처에 있는 집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무지 넓은 방을 내 준다. 방이라 하기엔 너무 넓어 물어보니 옆집이 가족들과 사는 집이고 이 집은 손님을 맞는 집이라 한다. 넓은 공간이 몇 개가 있는데 한 곳에 적어도 30명은 잘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는 나 혼자다. 사업을 하는 친구이다 보니 무슨 행사 같은걸 할 때 쓰는 집인 듯하다. 어쨌든 좋다.

샤워를 하니 파키스탄 사람들이 입는 파자마 같은 옷을 내준다. 처음 입어보는데 헐렁헐렁해서 편하다. 긴 팔에 긴 바지라 더워 보였는데 그렇지도 않다. 역시 옷은 그 지역의 옷이 그 지역에 최적화 돼있다. 난데없이 배구를 하러 가자고 해서 간다. 가끔 배구를 하고 노는 사람들을 봤었다. 쇼룸 직원들과 뒤뜰에 있는 간이 코트에서 군대 이후로 처음 배구를 한다. C 51-5기본기만 있으면 배구는 상당히 재미있는 스포츠다. 허나 이곳 사람들은 기본기가 없다. 무조건 넘기기 바쁜 전형적인 막 배구다. 그래도 오랜만에 하는 공놀이라 조금은 재미있다.

배구가 끝나고 무나바르와 그의 친구와 함께 밥을 먹으러 간다. 뭐 먹고 싶냐 묻길래 혹시나 해서 누들스프를 먹고 싶다 했더니 온 도시를 헤집으며 중국식당을 찾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누들스프는 못 찾고 닭고기 스프만 포장해서 친구들이 가는 식당으로 간다. C 51-6똑같은 짜빠띠와 양고기 커리지만 가격이 좀 되는 데라 맛은 좋다. 아직 속이 잘 받아들이지 않지만 국물과 같이 먹으니 먹을만하다. C 51-7

늦게까지 떠들다 들어오면서 밤에 TV 좀 볼 수 있나 묻는다. 버스를 타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오늘밤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무나바르는 기꺼이 문 닫힌 쇼룸을 열고 집에서 리시버를 갖고 와 스포츠 채널을 연결해 준다. 그리곤 옆에서 이불을 펴고 잔다. 축구엔 관심이 없나 보다. 세계가 열광하는 이 경기를 혼자 조용히 시청한다.

아~ 바르샤는 너무 강력하다. 내가 축구를 알기 시작한 이례로 이런 절대 강팀은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아마츄어 입장에서 봤을 때 바르샤를 꺾을 가능성이 있는 팀은 독일 국대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축구로는 절대 못 이긴다. 완벽하다 완벽해.

놀라운 경기를 보고 에어컨이 나오는 쇼룸 쇼파에서 이불을 덮고 잔다. 이불을 덮는 게 너무 생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