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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무나바르가 깨운다. 집에 가서 빵으로 아침을 먹는다. 어디 놀러 가자 해서 따라 나선다. 친구들이 잔뜩 모여 차를 타고 이동한다. 시장에 들려 음식 재료를 사는 것이 직접 요리를 해 먹을 생각인가 보다. 장작도 차에 싣고 외곽으로 달린다.

황무지 허허벌판 어디로 가려나 싶었는데 한참을 달리니 산 주변에 작은 시내가 흐른다. 시내를 따라 계속 올라가니 무슨 매표소 같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이곳에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표를 끊고 험한 자갈길을 힘들게 달리니 계곡이 나온다. C 52-1딱 물 주변에만 나무가 있다. 사람들은 손에 먹을 걸 바리바리 싸 들고 있고 아이들은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다. C 52-2우리도 물가 주변에 자리를 편다. C 52-3발을 물에 담그니 어디서 흘러내려오는 물인지 굉장히 차다. 친구들은 요리를 시작하고 난 주변 구경을 한다. C 52-4우리나라의 계곡 물놀이 풍경과 거의 비슷하다. C 52-5음식을 장작으로 하는 게 다를 뿐이다. 갑자기 삼겹살 생각이 난다.

한 친구는 양고기 요리를 한 친구는 닭고기 요리를 한다. 닭 요리 하는 걸 보니 닭볶음 탕과 거의 흡사하다. 간장과 고춧가루 대신 커리와 그 밖의 향신료를 넣고, 감자 대신 토마토가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는 우린 그걸 물에 삶고 얘넨 기름에 삶는다는 것이다. 끓는 점이 낮은 기름인지 튀긴다기 보다 삶는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C 52-7생각만해도 니글거릴 것이다. 내가 설사병 이후 밥 먹기 힘들었던 이유가 다 있다.

닭 요리가 완성되고 상이 펴진다. C 52-8그리고 곧 양고기 요리도 완성된다. '로쉬'라는 요린데 이건 그냥 간 맞춰 물에 삶은 요리다. 이 지역에만 있는 요리라고 하는데 몽골에서 몇 번 먹은 요리다. 몽골의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하다. C 52-9

어쨌든 난 그게 좋아 양고기만 계속 뜯어 먹는다.

한창 열심히 양고기를 뜯고 있는데 다른 친구들의 시선이 내 뒤편 어딘가를 향한다. 잠깐 뒤를 돌아보니 특별한 것 없이 다른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난 다시 양고기를 뜯어 먹는다. 무나바르가 이상한 듯 묻는다.

“넌 왜 안 쳐다봐. 저 여자들 섹시하지 않아?”

다시 뒤를 돌아보니 여자 둘이 물장난을 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파키스탄에서는 여자 보기가 힘들다. 내가 보기엔 섹시한 여자가 아니라 그냥 여자지만 주변의 모든 파키스탄 남자들은 마치 우리나라의 군바리들이 그렇듯 치마만 두르면 관심을 보인다. 궁금해서 물었다.

“파키스탄에서는 왜 이렇게 여자보기가 힘들어?”
“여자는 25살이 되기 전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가 없어서 집에서만 지내거든.”
“니네 일찍 결혼하잖아.”
“17살에서 30살 정도에 하지.”
“그럼 25살보다 어린 여자하고는 어떻게 결혼하는 거야?”
“그건 상관없어. 부모님이 알아서 결정하니까. 부모님들끼리 서로의 아들, 딸을 보고 결혼을 결정해. 그럼 결혼식 전날 남녀가 거울을 통해 처음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돌아와서 다음날 결혼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엔 그러지 않았는가. 그리고 무나바르는 퀘타라는 지방도시에 문중 회의 때 수백 명이 참관하는 종가집의 아들이다. 인터넷과 변화하는 세상을 알고 있지만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래도 고스라니 받아들이긴 쉽진 않다. 내 의중을 읽었는지 이미 결혼을 한 다른 친구가 말을 덧붙인다.

“그렇게 결혼하는 게 좋아. 부모님이 결정을 하면 서로 그 의견에 따르게 돼. 결혼한 여자는 우리 가족을 따르고 우리 가족은 그녀를 존중해주는 거야.
보통 나는 일 때문에 아침에 나와서 저녁에 집에 들어가는데,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집안 청소돼있지, 밥 차려주지, 얼마나 편하다고. 난 아내에게 한 달에 10,000루피(약 130,000원 – 경찰의 한달 월급이 15,000루피라고 했었다)를 줘. 아내가 뭘 사고 싶다고 하면 시장에 같이 가고, 친정에 가고 싶다고 하면 데리고 가. 여자는 요물이라서 혼자 뭘 하게 두면 안돼. 그래도 아내가 원하는 건 다 해줘.
파키스탄 사람들은 80% 이상이 그런 결혼에 만족하고 살고 있어.”

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반론을 제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실제로 내가 수박 겉핥기로 경험한 무슬림은 그 어떤 사람들보다 친절하고 호의적이지만 남녀 차별문제는 심각해 보였다. 물론 이 친구들의 의견이 모든 무슬림이나 파키스탄을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단 한 사람의 의견을 아닐 것이다. 난 너희의 의견을 이해한다는 선에서 이 대화를 마무리했다. 내 친구가 같은 소리를 했다면 귓방맹이라도 한대 후리며 욕을 해줬을 테지만 여기서 내가 이들에게 뭘 어쩌겠는가. 그러나 만약 무나바르가 나의 절친한 친구가 된다면 난 그럴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 남은 양고기나 마저 먹는다.

정말 오랜만에 포만감을 느낀다. 음식을 너무 많이 해서 많이 남긴다. 좀 노닥거리다 물에 담아놨던 시원한 수박도 먹고 팔자 좋게 늘어진다.

갈 때가 돼서 자리를 치우는데 음식 쓰레기를 아무데나 막 버린다. 주변에 사람이 많은데 다들 마찬가지다. 파키스탄에선 어디서든 쓰레기를 막 버린다. 경찰서에서도 사무실에서 담배피고 그냥 바닥에 버렸었다. 이래서 쓰나 싶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계곡을 나와 이동한 곳은 어느 호수다. C 52-10다들 신나게 사진 찍으며 잘 논다. 내 핑계로 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여 노니 좋은가 보다. 짜이 한 잔을 끝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와서 실탄이 있는 총을 꺼낸다. 오늘 사격을 하려 했는데 분위기가 안 좋아 못했단다. 아무리 자격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총을 소지하면 위험할듯싶다. 역시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머리가 답답해 짧게 민다. 보통 9mm로 미는데 이란 중부까지 사막이 이어지기 때문에 6mm로 밀어 버린다. 개운하다. 내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집에서 좀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