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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을 통해 유명해진 ‘샹그릴라’라는 말은 유토피아나 무릉도원 같은 이상향을 말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곳이 어딘지 궁금해하고 중국 정부는 그를 이용해 티벳 ‘중뎬’ 지역이 샹그릴라라고 공식 발표하고 지역 이름을 그렇게 개명한다. 물론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다. 4년 전에 [잃어버린 지평선]에 묘사된 내용을 바탕으로 진짜 샹그릴라를 찾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미루어 짐작건대 한 방송 관계자가 여행을 하다 [잃어버린 지형선]에 나오는 내용과 비슷한 몇 군데를 발견하고 이거 잘 추리면 방송 하나 나오겠네 싶어 추진한 일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에 따라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쓸데없이 여러 지역을 보여주다 훈자 즉 카리마바드에 도착하고는 소설과 일치하는 부분 서너 개를 제시하고 여기가 진짜 샹그릴라다라고 못 박는다.

실제로 제임스 힐튼은 중뎬도 카리마바드도 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여행기도 수필도 아닌 소설의 배경을 실제로 둔갑시키고 그를 이용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걸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그런 곳의 평화로움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내가 가본 내셔널지오그래픽 판 샹그릴라는 이상향으로 불리기엔 한참 모자랐다. 이상향까지는 기대도 안 했고, 이 정도면 그렇게 좋다고들 떠들어댄단 말이지 하고 좀 실망했었다. 내가 그런 감동에 좀 무디긴 하지만 내 눈에는 그냥 경치 좋은 조용한 동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첫인상은 그 정도에서 끝이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수록 난 그곳에 빠지기 시작했다.

카리마바드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곳이었다. 그곳이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면, 많은 가이드북에서 그곳을 소개하고 있다면 이미 관광지의 모습이 되어 있어야 정상인데 사람들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이 너무 순박하고 따뜻했다. 어른들은 먼저 인사를 건네고, 아이들은 장난을 치고는 부끄러워한다. 아~ 이게 자연의 힘인가? 그러면서 난 그곳의 경치를 다시 바라보게 됐다. 깎아지는 듯한 거대한 산은 사람을 압도하고, 그 위를 덮고 있는 눈은 경외심을 들게 한다. 곳곳에 피어 있는 벚꽃과 살구꽃은 포근하고, 눈이 녹아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소리는 편안하다. 이런 곳에서 살면 사람은 착해지는구나. 단 열흘뿐이었지만 그 시간만으로도 난 내가 조금은 변할 걸 느낄 수 있었다. (곧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지만…)Epilogue 1

자연은 정확하게 순리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한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은 자연에 따라 순리대로 살아간다. 그렇게 치우침 없이 정확하게 움직이는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면 순리대로 살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범죄자를 이런 곳에서 살게 하면 어떨까?

예전에 한 프로그램에서 사형의 필요성 유무에 대해 얘기를 하며 사람들의 의견을 모은 적이 있었다. 자신이 똑똑하다는 걸 은근히 내비쳐온 한 출연자가 최악의 범죄자가 종신형을 살면 그가 죽을 때까지 먹고 입히고 재우는 데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형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걸 보고 책만 너무 봤구나 싶었다. 그게 사회유지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내 주위의 누군가가 끔찍한 일을 당한다면 사적구제를 통해서라도 처단하고 싶을 거고, 뉴스에선 당장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 보이는 걸 보면 확신할 순 없지만, 우선 원론적인 걸 바라보자는 얘기다.

처음부터 악한인 사람은 없을 것이고, 처음부터 범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 주어진 환경에서 아등바등 살아보려고 달리다가 언뜻 뒤를 돌아보니 엉뚱한 길에 들어서 있고, 돌아가려니 반기는 사람도 없고 에잇 모르겠다 가던 길 가자 라고 하는 게 태반일 거다. 그건 당연히 당사자의 문제에 앞서 사회 시스템의 문제다. 굉장히 인본주의적 마음가짐을 갖고 말한다면 사회는 그들에게 그렇게 좆같이 살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흔히 ‘냉혈한’이라는 말을 쓴다. 누가 하나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피가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그들을 격리시켜야 한다면 차가운 쇠창살 속이 아니라 멋진 경치가 펼쳐진 곳에서 범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면 조금이라도 피가 데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들도 부정할 수 없는 사회의 구성원이고 결국 같이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범죄자의 인권을 옹호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사회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구성원 모두를 챙겨야 한다. 그게 바른 사회가 갖고 있어야 할 기본원칙이다. 삐뚤어졌다고, 틀리다고, 맘에 안 든다고 내친다면 그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어떻게든 같이 가려고 방법을 모색한다면 못할 것도 없을 텐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내 나라의 존재가 더 크게 와 닿는다. 인터넷 뉴스를 통해 보는 우리나라 그야말로 깝깝하다. 빨리 살기 좋은 우리나라로 돌아가야지 싶은 마음이 안 든다. 똘아이 대통령 하나 뽑은 게 그렇게 잘못이란 말인가.

두 번째로 독수리 둥지에 올랐을 때 이런 생각을 하며 명박이가 이곳에 있으면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해 봤다.

"범죄자의 인권? 사회 구성원? 잠깐만…
당장 카리마바드에는 필요한 게 뭐겠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지.
저쪽 산에 터널 좀 뚫어야겠고, 산등성이 눈하고 수로 정비 사업을 좀 해야겠어.
그게 다 잘 사는 길이야.
세금이 좀 필요할 듯."

우울했다. 언제쯤 우리나라는 ‘발전’이란 가치를 좀 내려놓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 사회를 생각하게 될까.Epilogue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