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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테헤란에 도착한다. 짐을 꾸려 대사관으로 달린다. 15km 거리에 있다. 테헤란의 교통은 엉망 그 자체다. 어디나 대도시는 혼잡하다. 테헤란에 차가 훨씬 더 많다거나 길이 나쁘거나 그런 게 아니다. 그냥 운전 매너들이 엉망이다. 양보의 미덕이 전혀 없다. 누가 더 늦게 브레이크를 밟나 내기를 하듯이 들이대고, 아무데서나 좌회전에 후진을 한다. 위험한 동네다. 그리고 무슨 도시를 산 능선에 만들어놨는지 도시 남쪽에 있는 터미널에서 북쪽 끝에 있는 대사관까지 줄곧 오르막이다. 첫인상이 안 좋다.

대사관에 도착한다. 목이 말라 정수기의 물을 먹으려 했더니 한국 직원 분이 그거 먹지 말라며 다른 물을 갖다 준다. 이란 물은 석회가 많아 특정 상표의 생수를 먹으라 한다. 나야 뭐 설사병 안 나는 물이면 된다. 그간의 사정을 말하니 따로 방을 마련해주면서 인터넷을 연결해주고 여권 재발급 절차와 필요한 서류를 준다. 여권 스캔본과 비자 사진 찍어 놓은 거, 그리고 사진도 충분히 있어서 어려움 없이 재 신청이 끝난다. 여권 발급기관이 아니고 대행해서 우리나라에 신청하는 것이기에 빠르면 일주 늦으면 이주가 걸린단다. 그 사이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중고 캠코더와 카메라를 알아봐달라 부탁한다. 아~ 이 쌩돈 날라가는 소리. 이제 와서 기록매체 없이 다니기도 좀 그렇다. 어쨌든 시작한 건 끝을 내야지. 카우치서핑 답변을 확인하고 한 아저씨에게 연락을 취해 만나기로 한다. 중간 중간 대사관 담당 직원 분이 먹을 것도 갖다 주고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써줘 고맙다. 한국말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대사관을 떠날 때는 신라면도 하나 준다. 이 귀한 걸...

연락을 취한 아저씨 집에 찾아가서 전화를 거니 회사에서 바로 온다. 좋은 빌라다. 이것 저것 집에서 지내는 것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하는 소리가 자기는 집에 거의 안 오니 많이 챙겨주기 힘들 거라고 미안해한다. 일부러 인터넷이 된다는 집을 고른 건데 이런 좋은 집에서 혼자 지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밥값이 좀 들 테지만 지금은 혼자 조용히 앞으로의 여행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집에는 에스프레소 머쉰도 있고, 차도 많고, 먹을 것도 구비돼있다. 혼자 잘 챙겨먹으라며 빵이니 치즈, 우유, 계란 등을 사와 냉장고를 채워준다. 완전 풀 옵션 레지던스 호텔인 셈이다. 아저씨는 유머러스하고 쿨하니 사람 참 편하게 해주는 스타일이다.

이란 사람에게는 '토룹'이라 말하는 정서가 있다는데, 문 앞에서 먼저 들어가라 하고 먹을 것도 계속 권하는 약간 지나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락말락하는 정도의 남을 위한 배려를 말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만난 세 명의 이란 친구는 모두 아주 능숙한 호스트 같은 느낌을 준다. 힘든 여행길에서 이런 친구들과의 만남은 너무 소중하다. 안 좋은 일을 당했지만 이란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테헤란에서 계획을 묻길래 그냥 동네구경하며 보통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 보는 게 좋다고 했더니 오늘 저녁엔 시간이 있으니 같이 나가잖다. 슬슬 산책하며 이란에 대한 얘기도 해주고, 무슨 가게가 어디 있는지도 알려준다. 사람들을 보니 테헤란은 확실히 대도시라 여자들의 차도르가 컬러풀하다. 근데 여자들은 좀 무섭게 생겼다. 가뜩이나 뚜렷한 이목구비에 짙은 색조화장을 하고, 왕방울만한 눈에 짙은 색 아이라인을 그리고, 족히 1cm는 될법한 속눈썹을 마스카라로 올려놔서 오히려 어색하다. 그렇게 꾸미고 다니는 여자가 너무 많다. 자꾸 여자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하나같이 차도르를 쓰고 있는 모습이 나름 신기해서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안 불편할까? 불만은 없을까? 생각하면서...

모함마드 아저씨와 유명하다는 페스트푸드점에 가서 피자를 먹는다. 이란 피자는 정사각형 모양이다. 맛은 같다. 피자를 그리 즐기진 않는데 오랜만이라 맛있다. 피자를 두 판이나 시켜 남아서 포장해온다. 내일 아침 해결.

집에 돌아와서 열쇠는 건네주고는 잘 지내라고 하고는 모함마드 아저씨는 어디론가 간다. 나가면서 이란 사람 사는 거 보고 싶으면 내일 친구랑 같이 보자 해서 그러자고 한다. 집에 혼자 남았다. 무엇부터 해야 하나... 차근차근 정리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