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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 아줌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오토바이 하나 보냈으니 그거 타고 자기 집으로 오란다. 씻고, 옷 챙겨 입고 오토바이 타고 모지 아줌마의 집에 도착한다. 동생과 조카는 어딜 갔는지 없다. 차 한잔 마시고 나선다. 우선 택시를 타고 유명하다는 시장에 간다. 론리플래닛에도 소개돼 있는 곳이다. 몇 백 년은 됐다는 건물의 흔적이 남아있고, 한 낮인데도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다. 특별히 신기한 건 눈에 띄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시장이다. 한 쪽 구석에 가니 이란 최고의 히트 상품인 페르시아 카펫을 파는 상점이 모여있다. 특별히 아는 곳이 있는지 한 가게 뒤편에 있는 창고 같은 델 데리고 간다. 많은 카펫이 쌓여있는 곳에서 상인이 몇 개 펼쳐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딱 그런 카펫이다.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카펫의 문양이 모두 이곳에서 기원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렇기에 독특함이 없어 좀 시시하다. 가격을 물어보니 큼직한 카펫이 2,200,000토만이란다. 무지하게 비싸구나. 현지인들도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런 게 우리나라에 가면 천만 원은 하겠지. 이런 거 바닥에 깔아놓으면 편하게 밟기나 하겠나.

시장을 나온다. 카펫 상점 말고는 정말 볼 거 없는 시장이었다. 거리를 좀 걷는다. 여기저기에 오래된 건물이 참 많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지금 이 순간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이 없는 것 같다. 옛 것과 현재의 것을 딱 구분해 놓고 관리한다. 삶이 역사와 같이 살아 숨쉬는 곳이 거의 없다. 몇 몇 지정 관리하는 유적지가 아니면 서울이 어딜 봐서 6백 년이나 된 수도인지 알 수가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밥을 먹으러 간다. '디지'라는 음식 한 메뉴만 파는 유명하 식당이란다. 딱 봐도 포스가 느껴진다. 주문을 할 것도 없이 사람 수대로 음식이 나온다. 샐러드, 난 그리고 호리병 같은데 국물 요리가 나온다. 우선 호리병에 떠있는 양고기 지방 덩어리를 빈 그릇에 놓고 짓눌러 으깬다. 그리고 호리병에 든 걸 붓는다. 감자, 양고기, 콩이 들어있는 스프다. 양고기의 노린내는 거의 지방에서 나오니 그걸 싫어하면 처음에 비계를 버리면 된다. 맛은 양고기 맛 물씬 나는 고추장 찌개다. 거기에 난을 잘게 찢어 넣고 떠 먹는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추장찌개에 밥 말아 먹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요새 사골국을 먹고 있지 않았다면 오랜만에 먹는 국물요리가 좋았을 거다. 가격은 15,000토만으로 비싸다. 이런 건 현지인 친구가 없으면 접하기 힘든 거라 이런 만남의 기회는 정말 소중하다.

카페에 가서 잠시 쉰 후 갤러리에 간다. 이것도 모지 아줌마가 캐릭터 디자이너가 아니었으면 올일 없었던 곳이다. 사람들도 다 취향이 달라서 사람마다 방문하는 곳이 다르다. 그것도 큰 재미다. 작은 갤러리라서 그런지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그림은 없었다.

더우니 잠시 쉬자 해서 집으로 돌아간다. 너무 일찍 일어나 졸려서 낮잠을 한숨 잔다. 일어나니 어제 만났던 동생과 조카가 왔다. 노닥거리다 해질 무렵 차를 타고 어디론가로 간다. 이란엔 여성운전자가 꽤 많은데 남자 못지않게 터프하다. 터프한 것과 개념 없는 건 완전히 다르다. 이곳에서 개념 없는 운전하면 바로 사고 난다.

한참을 달려 산 속으로 들어간다. 여기저기 비싸 보이는 예쁘게 꾸며놓은 레스토랑이 많다. 사람도 많다. 야경이 보이는 지역은 아니다. 맨 위에 있는 식당에 들어간다. 케밥을 시킨다. 케밥이라하면 우리나라에선 고기 썰어 밀빵에 야채와 싸서 먹는 걸 말하지만 여기선 그냥 길게 해서 구운 고기 요리다. 파키스탄, 인도에서도 그랬다. 케밥의 종류가 여러 가지 있는진 모르겠다. 그건 터키 가서 확인할 일이다. 느긋하게 노닥거린다. 이 집안 여자들은 웃을 때 입꼬리가 올라가서 조커 같은 입모양이 된다. 세 명이 다 그런 입모양을 하고 있으니 웃기다. 시간이 늦어져서 집으로 돌아온다.

하루 잘 놀았다. 그렇지만 식사도 뭣도 비싼 곳만 가서 머뭇거리다가 타이밍을 놓쳐 한 푼도 쓰질 못했다. 상대방은 그 만큼 값을 치렀다. 이런 건 좋은 경험과는 별도로 부담스러워 싫다. 잘 알지도 못하고, 갚을 기회도 없을 것 같은 이들에게 많은 신세를 지는 맘이 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