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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아~ 인나기 싫어. 일어날까 말까 몇 번이나 뒤척이다가 일어난다. 서류들을 챙겨 나온다. 외무부에 가야 한다. 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금방 도착한다.

접수처 같은데도 없고, 어느 사무실로 가보래서 간다. 서류를 보더니 싸인을 하고 다른 사무실로 가래서 이동. 거기서 확인 받고 서류 몇 개 더 들고 다시 처음 갔던 사무실로 가서 또 싸인 받고 다시 다른 사무실로... 여기는 지들이 하지 않고 당사자가 왔다갔다하며 결제를 받는 시스템이다. 최종 서류를 봉투에 넣고 나에게 준다. 또 어디로 가라는데 외무부에 근무하는 직원도 영어를 잘 못한다. 파르시로 써있는 주소를 들고 나온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 물어 5km 정도 떨어진 여권, 비자 관련 사무실에 도착한다. 사람이 많이 기다리고 있는데 시스템이 멈춰 일 손을 놓고 있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한 무리의 학생들이 다가와 말을 건다. 아프카니스탄 학생들이다. 이란에서 공부를 하고 있나 보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아프카니스탄은 아랍계 사람들이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모두 몽골계다. 우리나라보단 네팔 사람과 비슷한 몽골계다. 몽골계 사람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든다. 이란에서 나보고 가끔 아프카니스탄 어쩌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날 아프카니스탄 사람으로 착각해서 그랬나 보다.

업무가 시작돼 창구에 서류를 내미니 이 사람들도 영어를 잘 못한다. 난감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프카니스탄 친구가 와서 도와준다. 여기서도 여러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새로 서류를 준비할 게 있다며 필요한 걸 적은 프린트된 메모를 건네는데 전부 파르시다. 은행의 입금전표도 영어가 하나도 없고, 계좌번호마저도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이곳 알파벳 숫자다. 아프카니스탄 친구가 아니었다면 꽤나 고생스러웠을 거다.

서류를 다 준비하니 이 친구는 자기도 볼일 끝났다며 인사를 하고 친구들과 떠난다. 갑자기 아프카니스탄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확 온다. 아프카니스탄을 여행 금지국가로 지정한 건 우리나라 내부의 문제라 아프카니스탄 비자를 받는 거랑은 아무 상관이 없다. 필요한 레터가 있다면 여행사를 통하면 되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다. 파키스탄이었다면 고려를 해 봤을 텐데 이미 그 지역을 벗어났으니 생각을 접는다.

새 비자 발급은 비자연장에 준해서 처리하는 것 같다. 서류 폼도 비자연장 서류고, 수수료도 비자연장과 같은 2만 토만이다. 이런 경우가 흔치 않을 테니 그러려니 하지만 지네 나라에서 일어난 범죄에 피해를 당한 건데 미안해서라도 공짜로 해주면 안되나 싶은 생각을 좀 하다 만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니 도난을 당했던 쉬라즈 이민국에서 팩스를 받아야 처리가 된다고 내일 다시 오라 한다. 여권, 비자 관련 문제는 언제나 귀찮은 일 투성이다.

집으로 돌아온다. 밥을 챙겨먹고 인터넷 뉴스를 보다 헛웃음을 친다. 3년 전인가 친구가 작업을 한다 길래 손이나 빌려주러 갔다가 촬영을 한 적이 있다. 인터넷에 떠돌던 북한 여경찰의 모습을 컨셉으로 잡은 모 자동차의 페이크 영상 광고였다. 광고라고 직접 말하는 게 아니라 페이크 영상을 만들어 모른 척 유튜브에 올리는 목적이었다. 세트를 짓고, 마치 아마추어 관광객이 찍은 것처럼 촬영을 했었다. 제법 그럴듯하게 나왔는데 당시에는 반응이 없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그게 이제서야 화제가 된 거다. 이 글로 난 '그게 사실 뻥이에요.'라고 내부기밀을 고발하는 셈인데 너무 짜증이 나서 어쩔 수가 없다. 인터넷에는 일반 네티즌뿐만 아니라 유수의 일간지 웹 페이지에서도 최근 북한의 모습이라며 그 영상을 소개하고 있다. 원본 영상이 있는 유튜브에 가 보면 그게 3년도 더 지난 영상임을 알 수 있고, 이미 다른 내부고발자가 페이크란 사실을 댓글로 달아놨음에도 확인도 안 해보고 버젓이 그런 기사를 낸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 그 영상을 기초로 현재 북한의 상황을 분석한 글까지 있으니 황당할 뿐이다. 우리나라 언론이 엉망이건 이미 알고 있던 바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체험하니 아주 절망스러운 수준이다.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조직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말세다.

저녁에 모함마드가 와서 잠깐 얼굴을 비추고 간다. 내일 또 오전에 나가야 한다. 잘 하면 저녁때 친구의 동료를 통해 장비들도 받을지 모른다. 드디어 이곳을 떠날 때가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