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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bia
Scott

밤새 비가 많이 왔다. 처마 밑에 텐트를 쳐서 상관없었지만 여전히 흐린 날씨에다 비가 올랑말랑 한다. 몸이 이상하게 피곤하다. 고작 하루 달렸을 뿐인데 알 수 없는 피로가 쌓여 있는 듯한 느낌이다. 어쨌거나 출발한다.

비가 내린다. 피할 정도는 아니라서 그냥 달린다. 금방 그치지만 또 금방 내리곤 한다. 배가 고픈데 가게가 나오지 않는다. 12시가 넘어서 식당이 하나 나왔는데 가격이 비싸다. 제일 싼 고깃국에 난 하나 주는데 7라리(약 4,600원)다. C 12-1한끼에 5라리정도 생각하고 20라리를 남겨왔는데 클났다. 이 식당이 아니면 또 언제 가게가 나올 줄 몰라 먹긴 먹었는데 곧 고속도로 길이 평범한 시골길로 바뀌면서 가게가 드문드문 나오기 시작한다. 판단미스.

예상했던 1,500m 고지는 나오지 않고 아주 조금씩 고도가 높아지고 있다. 난 해안가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길 옆에 흐르는 강은 반대로 흐르고 있다. 이 강의 상류는 도대체 어딘지 모르겠지만 거기까진 오르막이 이어질 거란 얘기. C 12-2

생각보다 속도가 안 나고 있다. 뒷바퀴에서 계속 베어링 짖니겨지는 불쾌한 소음이 들리고, 날씨는 흐리멍텅하고 배도 고프고 오늘따라 유독 의욕이 없다. 떠나기 전 마지막 본 영화는 ‘비욘의 아내’라는 일본영화였다. 아사노 타다노부를 보려고 다운받은 영화였는데 다자이 오사무 원작이었다. 다자이 오사무 아저씨의 소설만 읽으면 무기력해지고, 권태로워지곤 했었는데 영화에까지 그런 영향을 준건지 왠지 모를 우울함이 하루 종일 괴롭힌다. 그리고 허기가 심해지면서 페달을 밟는 힘이 부족해진다. 엉망인 하루다.

큰 마을을 하나 지나는데도 부족한 경비로 오늘 더 이상의 소비는 안될 것 같아 그냥 지나친다. 두리번두리번 야생과일을 찾아보지만 딱히 먹을만한 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해가 진다. C 12-3민가도 가게도 없어서 길을 살짝 벗어나 강 옆에 텐트를 친다. 배 고픈 건 참아도 찝찝한 상태로 자는 건 못 참는다. 생각보다 물이 차지 않아 홀라당 벗고 들어가 몸을 씻는다. 언제까지 이 기분이 이어질지 모르겠다.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