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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텐트를 접고 빵과 잼으로 아침을 먹는다. C 16-1주유소 주인 아저씨가 어김없이 차를 갖다 준다. 잘 먹고 출발.

시작부터 오르막이다. 남은 거리 60km. 두어 번의 오르막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건 너무 길게 이어진다. 2시간을 내리 오르막을 오른 후 첫 휴식을 취한다. 이젠 끝이겠지. 남은 거리가 많지 않아 휴식도 많이 취하면서 여유롭게 달린다. 곧 앙카라에 들어선다. 앙카라는 딱히 특별한 구석이 없는 평범한 도시처럼 보인다. C 16-2

연락해둔 카우치서핑 친구 알리의 집에 도착한다. 똥배가 없는 잭 블랙을 닮은 알리와 인사를 한 후 집에 들어간다. 잘 사는 집이다. C 16-4우선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뎁혀준다. 터키 음식은 다 맛있다.

TV뉴스를 보는데 알리가 계속 통역을 해준다.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인데 터키 남동쪽 지역의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유는 그쪽 지역에 사는 쿠르드 족이 따로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란도 걸쳐있는 지역이라. 이란과 터키가 손을 잡고 그쪽 게릴라를 공격하고 있는 TV뉴스로만 봐도 상당한 규모의 공습이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두 번째 뉴스는 프로축구의 승부조작사건으로 시끌벅적한 분위기. 알리는 정치인의 모습이 비출 때마다 욕을 해댄다. 지금 정부가 이슬람 원리주의를 지향하면서 수도를 다시 이스탄불로 옮기려고 한다는 둥 말이 많다. 수년 전 이슬람 원리주의 지향 정부에 대항해 세속주의를 내세우는 군 장성이 쿠데타를 일으키려다가 실패로 돌아간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여전히 그 문제가 존재하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세속주의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정부를 말한다. 98%가 무슬림이지만 터키는 헌법상 세속주의를 표하고 있다. 알리 본인은 종교가 없다고 한다.

한 사회에서 2%에 속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게 그 사회의 전통을 거스르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고등교육을 받으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부조리한 사회규칙을 의심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회는 그런 소수에 의해 바뀌게 된다. 플랜을 포함한 모든 어린이 후원단체가 교육에 신경을 쓰는 건 바로 그런 이유일거다. 문제는 사람은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영악해져서 나중에는 오히려 그 부조리를 이용해 제살 불리기에 여념이 없다는데 있다. 그게 딱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이고, 자본주의 사회의 결정적 결함이다.

알리는 트라브존에서 살았는데 고등학교 때 이쪽으로 이사를 왔단다. 앙카라는 볼 것도 없는 지루한 도신데 터키에서 제일 좋은 대학교가 이곳에 있어서 이사를 왔다고 하는 거 보니 여기도 학군을 많이 따지는구나 싶다. 배가 고프다며 맥도랄드 배달을 시키는 것을 보면 딱 그런 세대임이 느껴진다. C 16-3잠시 후 부모님이 들어오신다. 살갑게 맞아주시는 게 참 좋은 분들이다. 그런 것 같다가 아니라 첫눈에도 딱 좋은 분들임이 느껴진다. 외동 아들내미의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알리의 외할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했다며 특히 어머니가 날 반가워하신다. 전쟁 중 부상으로 한국에 오래 머물렀으니 자기 형제가 한국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농을 건네시는데 누가 알랴.

알리의 아버지가 트라브존에 출장 간다고 터미널까지 배웅을 해드리고 알리와 함께 친구들을 만난다. 친구들과 술을 사 들고 알리의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 자리를 편다. C 16-5터키에서 제일로 쳐주는 학굔데 이 운동장이 프랑스 68 혁명처럼 80년대 터키 학생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유서 깊은 곳이라 한다. 공부 좀 해야 들어올 수 있는 학교라 그런지 친구들 모두 유창하진 않아도 영어로 의사소통이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터키에서 처음 마시는 술인가? 친구들이 서로의 친구들을 불러 어느덧 열댓 명의 애들이 모인다. 이 학교에선 서로에게 ‘호잠’이라고 부르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그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돼서 경비아저씨나 청소부에도 모두 ‘호잠’이란 호칭을 사용한다. ‘호잠’은 선생님이란 의미로 세상 누구에게도 배울 게 있으니 겸허하게 배우라는 뜻이 담겨있다. 참 멋진 전통이다. 하지만 호잠이든 누구든 술자리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난잡해진다. 알리가 2주 후에 중요한 시험이 있다며 자리를 떠서 같이 일어선다.

집에 오니 어머니가 TV를 보고 계시다 아들내미 온 걸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려 하신다. 알리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그래 아직 부모님 고마운 걸 모를 나이지. 나도 씻고 자리에 눕는다.

친구들 모두 앙카라가 지루한 도시라고 하는데 난 왠지 맘에 든다. 푹 쉬다 다음 행선지로 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