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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친구들이 사온 빵과 차로 간단히 아침 해결. 짐을 뺀다. 포옹하며 빰을 왼쪽에 댔다 오른쪽에 댔다 하는 터키식 인사를 하고 출발한다.

오늘은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고 있다. 도심을 빠져 나가자마자 오르락 내리락과 함께 강력한 맞바람이 불어온다. 아~ 맞바람이 제일 싫다. 낑낑거리며 달리고 있는데 저만치 앞에 또 다른 자전거 여행자처럼 보이는 움직임이 있다. 나도 힘들어서 속도를 내진 않지만 점점 가까워진다. 체구며 옷이며 어째 여자 같다. 남녀커플이 아닌 여자 자전거 여행자는 본 적이 없다. 혹시 저 여자 이름에 알파벳 ‘u’가 들어가는 게 아닐지… 괜히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점점 가까워지다 구불거리는 길 끝에 올라서자 저 멀리 또 다른 남자가 다리고 있다. 그러면 그렇지. C 26-1남자애가 여자친구의 위치를 확인하다 나를 발견하곤 멈춘다. 만난다. 호주 남자와 영국여자앤데 역시 동쪽으로 향하고 있는 길이다. 나도 카파도키아를 가려고 좀 돌아가고 있어서 같은 길을 타게 됐다. 얘넨 어째 그리 반가워하는 느낌이 없어 사진을 찍으려고 폼 잡다가 만다. 여자애는 반 기아 상태로 보일 정도로 말라서 힘든 자전거 여행을 해도 될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자는 자기 여자친구와 함께 그걸 공유하고픈 로망이 있어서 커플이 같이 자전거 여행을 하는 걸 보면 꽤 부러운데 이 여자애는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혼자가 아닌 커플인 것에 아무런 아쉬움도 없다. 미련 없이 둘을 앞질러 질주한다.

계속해서 힘든 길과 맞바람은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길이 작은 시골길로 바뀐다. C 26-2이란에서 달렸던 밀밭 길과 비슷한 풍경이다. 차도 없고 조용하니 좋다. 시골길이다 보니 길 옆에 과일이 많이 보인다. 다른 건 모르겠고 포도가 탐스럽게 열려 한 송이 따 먹는다. C 26-3오~ 맛나네. 넝쿨을 올리지 않고 땅에 그대로 자라게 하는 식으로 기르는데 씨를 따로 발라낼 필요 없이 그냥 씹어먹어도 괜찮아서 먹기가 편하다. 오늘 저녁으로 당첨. 많이 따고 싶었는데 큰 봉지가 없어서 세 송이만 딴다.

곧 해질 때가 됐는데 시골길이라 주유소도 없고 잘 데가 마땅치 않다. 애초 계획은 95km를 달려 카파도키아에 도착한 후 론리플레닛에 소개돼있는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거였는데 맞바람 때문에 70km밖에 달리지 못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가던 길을 계속 달리고 날이 어두워진다. 맞바람은 밤에도 여전하다. 어두워 잘 안 보이는데 길가 옆 풍경의 실루엣이 카파도키아에 가까이 왔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냥 계속 달린다. 어둡고, 길 나쁘고, 맞바람 부는 삼박자 골고루 갖춘 악조건에서 2시간 반을 달려 ‘궤레메’에 도착한다.

한눈에도 관광지 분위기가 물씬 이다. 난 좀 더 들어가 캠핑장에 도착한다. 가격을 물으니 18리라(약 11,200원). 썅! 2008년 론리플레닛이라 해도 거기엔 5리라(약 3,120원)정도여서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10리라(약 6,240원)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너무 심하잖아. 훈자 마을 이후 5개월 만에 돈을 내고 자야 하는 상황과 어차피 텐트를 쳐야 하는 상황 등이 맞물려 속이 쓰리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내일 하루 짐 맡기고 돌아다닐까 싶기도 했는데 안되겠다. 그 돈으로 고기를 먹고 말지.

텐트를 친다. 조리시설과 뜨신 물 샤워 말고는 별 다를 것도 없는 곳이다. 조리 시설은 재료가 없어 내겐 무용지물. 뜨신 물만 콸콸 틀어놓고 씻는 것 말고는 아까움을 상쇄시킬게 없다. 샤워를 한 후 빵과, 포도로 밥을 먹고 잘 준비를 한다. C 26-4

여기 정보가 없어서 어떻게 구경을 해야 잘했단 소릴 들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