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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Korea
Columbia
Scott

어제 밤엔 사다 놓은 닭다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자려다가 일어나 기어이 그걸 삶아 먹고 잤다. 일어나서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다. 언제나 이런 국밥류의 음식이 가장 그립니다.

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웹서핑을 하다 R.E.M. 해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다. R.E.M.은 U2와 더불어 나의 성장기와 함께한, 내겐 정말 소중한 밴드다. 마치 음과 양의 조화처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이 두 밴드 덕분에 내 취향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R.E.M.은 정말 딱 그들답게 조용히 밴드 해체를 발표했다. “성공을 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지...”하고 놀라워했던 커트 코베인의 말처럼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지니스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난 그런 그들을 존경한다. 최소한의 예를 지키기 위해 당분간 R.E.M.을 끼고 살아야겠다.

해가 질 때쯤 리팟의 가게로 간다. C 53-1어두워지니 손님들이 좀 있는 것 같다. 거리도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에 시끌벅적하다. 왜 이렇게 나이든 사람들만 있나 싶었는데 어두워지니 젊은 애들이 나와 여기저기서 클럽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가게 문을 닫고 우리도 한 펍에 가서 맥주를 마신다. C 53-2크지 않은 동네라 서로들 잘 안다. 12시가 지나자 일을 마친 동네 가게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들어 술자리가 흥겨워진다.

이런 자리에선 대부분 지들 말로 대화하기 때문에 난 그냥 분위기만 즐긴다. 이런 것도 이제 익숙하다. 근데 간혹 지들만의 대화 내용을 따로 통역해주는 친구가 있다. 그럼 당연히 술자리가 더 흥겨워진다. 이런 게 바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리팟도 그렇고 앙카라에서 만난 알리같은 경우엔 대화 내용이 아니라 대화 하나하나 다 통역해주었다. 신기한 건 이런 것까지 챙겨주는 친구들은 대게 쿨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쿨하다는 느낌이 다소 냉소적인 모습을 띄곤 하는데, 그런 친구들이 이런 자잘한 배려에 더 능숙하다는 게 흥미롭다. 진정한 쿨함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만큼 상대방을 인정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술자리가 끝나고 리팟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식당에 들린다. 술을 먹으면 숙취해소를 위해 스프를 먹고 잔다고 한다. 터키 전통 스프를 먹어보겠냐 해서 OK 하고 기다리니 양 노린내 물씬 나는 스프가 나온다. 내용물은 양고기, 양곱창, 양뇌 등이다. C 53-3뇌와 노린내를 제외하면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하고, 오히려 내가 원했던 그런 스프다. 뇌는 연한 간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양 노린내는 많이 나지만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다. 우리나라와 동남아 정도를 제외하면 어디서나 양고기가 흔해서 자주 접하다 보니 이제 그 양고기 냄새가 가끔 그립기까지 하다. 그 내면은 단순히 고기를 그리워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맛이 아주 좋다. 밥 말아먹으면 훌륭한 곰탕이 될 듯한데, 얘넨 스프를 너무 조금씩 먹어서…

스프을 먹고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온다.

리팟이란 좋은 친구를 만나 지루했던 지중해 휴양지 여행이 활기를 찾았다. 무언가를 같이 공유하고, 함께 해서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 동안 매너리즘에 빠져 무기력함이 장난 아니었는데 이 기횔 통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