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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눈을 떴지만 텐트를 때리는 빗물소리에 짜증을 내며 다시 눈을 감는다. 느즈막이 다시 일어난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텐트에서 나와 텐트와 자전거를 지붕이 있는 곳으로 옮기는데 뒷바퀴가 펑크나 있다. 가지가지 하는군. 우선 주유소 친구가 준 차를 한잔 마시고 펑크를 때운다. C 63-1오랜만에 순조로운 주행이다 싶더니 난데없이 비라니. 한 두 시간 내릴 비가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주유소 사무실에 앉아 혹시 비가 그칠까 기다려본다. 주유소 친구가 샌드위치를 준다. 두 시간을 기다려도 비는 전혀 그칠 생각을 안 한다. 앞으로 나흘 동안 내릴 거란 소릴 한다. 모르겠다. 가자.

판초우의를 뒤집어 쓰고 달리기 시작한다. 강한 빗줄기에 판초우의는 이내 무용지물이 된다. 졸라 춥다. 움직일 때마다 젖은 옷이 살에 닿는 느낌이 아주 씨발스럽다. 멈추면 너무 춥기 때문에 페달을 멈출 수가 없다. 빗줄기가 다소 약해지면 젖은 빗물이 체온에 덥혀져 좀 괜찮다가 빗줄기가 다시 강해지면 열라 추워진다. 이렇게 종일 달리는 건 미친 짓이다. 10km 지점에서 방향을 틀고 40km를 가면 큰 도시가 있다. 그곳에 가서 인터넷 카페를 찾아 카우치서핑을 알아보는 게 확률은 떨어지지만 가장 현실적인 것 같다. 그래 그렇게 하자. 정 안되더라도 구할 수 있는 숙소라도 있어야 하니깐. 그렇게 결심하고 갈래길에서 방향을 돌린다.

5km쯤 달리니 비가 그친다. 비가 그치고 나니 이거 달릴만한데 하는 생각이 든다. 원래 가려던 길로 연결되는 샛길이 나와 다시 방향을 돌린다. 다시 비가 내리려 해서 근처 모스크에 들어간다. 곧 비가 그친다. 다시 달린다. 근데 샛길이다 보니 비포장길이 나온다. 이런… 진흙이 된 땅이 바퀴에 달라붙어, 눈덩이 굴리듯이 바퀴가 커진다. 어느 순간에 이르자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C 63-2나뭇가지를 구해 흙을 떼어내고 끌어보지만 1m 나가기가 힘들다. 그리고 다시 비가 온다. 미치겠다. 진흙 밭에 완전히 갇혔다. 춥다. 너무 춥다. 자전거는 꼼짝 안 한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다. 2년 동안 이렇게 난감한 상황에 놓인 적이 있었을까? 그냥 도시로 갔어야 했다. 샛길로 방향을 튼 건 완벽한 판단미스다. 소리를 꽥 한번 질러주고 다시 자전거를 뒤로 돌린다.

간신히 진흙 범벅이 된 자전거를 끌고 진흙 밭을 나온다. 이 상태로는 오늘 내에 도시에도 도착할 수 없다. 잠깐 쉬었던 모스크로 간다. 짐을 풀고 바퀴를 분리한다. 너무 춥고 귀찮은데 이 진흙이 굳으면 더 골치 아파진다. 수돗가에서 난데없이 자전거 청소를 한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이 모스크의 애잔 방송을 맡고 있는 듯한 아저씨가 와서 반갑게 인사한다. 기도 전에 손발을 씻는 수돗가를 진흙탕으로 만들어놔서 한 소리 들을까 싶었는데, 그건 전혀 게의치 않고 밥 먹었냐며 손짓한다. 아직이라고 하니 잠시 후 아들, 딸과 같이 밥, 콩스프, 빵, 과자를 갖다 준다. 꼬맹이들은 신기하게 바라본다. 모스크에서 자도 되냐 물으니 모스크 옆에 있는 창고 같은 건물 문을 따준다. C 63-3

아저씨와 꼬맹이는 잘 자라며 집에 가고, 난 자전거 청소를 마치고 대충 몸을 씻는다. 하루 종일 추위에 떤 손이 파랗다. 마른 옷을 꺼내 갈아입는다.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모르겠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 내일은 어떡해야 하지? 눈 앞이 깜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