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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좀 일찍 일어난다. 아흐멧은 출근했다. 오늘 힘들게 달려야 하니 밥을 해서 닭고기 육수 국물을 만들어 말아 먹는다. 짐을 싸고 출발하려는데 살짝 비가 내린다. 차 한잔하며 잠시 기다린 후 집을 나온다.

날씨 참 우중충하다. C 66-1어렸을 때 재밌게 본 영화 중에서 나중에 한가닥하는 젊은 배우들이 잔뜩 나온 ‘Flatliners’라는 영화를 보면 시작부분에 키퍼 서덜랜드가 이런 날씨의 부둣가에 서서 이런 대사를 읊조린다. “음… 죽기 좋은 날이군.” 구름을 톡 건드리기만 하면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엿같은 날씨. 어쨌든 출발한다.

초반에는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안 오는 것도 아닌 애매한 부슬비가 내린다. 바람도 전체적으로 맞바람이다. 도시를 빠져 나오자 한차례 비가 쏟아진다. 피할 곳을 찾다 포기하면 비가 멈추고 그 달리는 사이에 옷이 살짝 마른다. 그리고 또 달릴 만 하면 비가 다시 내리고 피할 곳을 찾으면 그친다. 고도가 1,000m 정도라 구름이 낮게 그리고 빠르게 움직여 비를 내리고 사리지고 한다. C 66-2땅바닥에 앉아 담배를 필 때 개미가 얼쩡거리면 심심풀이로 앞길을 담뱃불로 막는 장난을 치곤 하는데 마치 하늘이 나에게 그런 장난을 치는 것 같다. 꼭 피할 곳이 있는 마을이 나타나면 비가 그치고 마을을 벗어나면 비가 내린다. 그러다 길게 이어지는 산길 오르막에서 된통 비를 맞는다. 곧 큰 도시가 나와 밥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다가 마땅한 곳이 나오지 않아 도시를 지나쳐 버린다. 이러다 오늘 쉬지도 못하겠다. 그래 한번도 시도해 본적 없는 쉬지 않고 달리기를 해봐야겠다.

이스탄불이 가까워져서 인지 길도 좋아졌다. 그러나 날씨는 여전하다. 또 비가 퍼붓는데 근처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난다. 그래 열심히 달린다고 누가 상 주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고 배가 너무 고프다. 한번도 쉬지 않고 6시간을 달렸다. 그러나 80km밖에 못 달렸다. 산길이 많았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나오려 하는데 또 비가 온다. 한번 멈췄더니 젖은 옷 때문에 추위가 몰려온다. 아~ 가기 싫어. 옆자리에 있던 아저씨가 맥주를 준다. 받아먹으니 곧 사람들이 몰려든다. 아저씨가 계속 비오니 자기집에서 자라 한다. 춥고 귀찮았는데 잘 됐다. C 66-3사실 터키는 다 좋은데 이런 만남이 적었다. 그건 내 탓이기도 하다. 이런 만남은 주로 이런 곳에서 잘 이뤄지는데, 혼자 달리고부터 휴식시간도 많이 없어졌고 밥값 아끼느라 빵 사서 한적한 곳을 잡아 먹었으니 만남의 기회 자체가 적었다.

자전거를 가게 창고 같은데 두고 아저씨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맥주를 들고 집에 간다.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며 논다. C 66-4오늘 130km는 달려놔야 내일 도착 할 수 있는데 다 틀렸다. 그렇지만 이런 만남이 있다면 그런 건 중요치 않다. 여행 중 제일 기대하고 있는 게 바로 이런 거니깐. 오랜만에 많은 맥주를 마시고 즐겁게 떠든다. 비속에 텐트를 치지 않아 다행이다.

아~ 춥다. 날씨 참 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