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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소포 배송조회를 해 보니 여전히 인도 도착 후 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 나흘 동안 그 상태 그대로. 정보를 찾아보니 인도의 공무원들은 느려터져서 그 뒤로 일주일 혹은 열흘 정도 지나야 배송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가 있다. 답답해서 키산 아저씨에게 소포 배송조회표를 보여주니 우체국에 직접 가야 할 거라며 지도를 보고 위치를 가르쳐준다.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가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다. 그것도 한번에 해결되는 게 아니라 우체국 갔다 고객센터 갔다 해야 할 거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네들은 자신들 나라의 비효율적인 업무방식을 다 알고 있는 듯하다. 모르는 게 바보지. 인도의 우체국은 10시에 시작하고 4시 반에 끝난다. 여기저기 움직여야 한다면 오늘은 이미 늦었다. 내일 가기로 하고 밥을 준비한다.

오늘은 좀 색다른 걸 먹을까 싶어 가게에 가서 샌드위치 재료를 사온다. 색다른 게 샌드위치 따위라면 좀 우습지만, 상황이 상황이니까. 네팔 편에서 누나가 예전에 해준 샌드위치에 대한 글을 보고 누나가 자세한 레시피를 알려줬다. C 39-1 그대로 해보니 내 인생 최고의 샌드위치가 만들어졌다. 살짝 구운 베이컨만 추가됐으면 정말 훌륭했으리라. 맛있게 샌드위치를 먹으니 다섯 시. 샌드위치 만드는 데 두 시간 반이나 소요됐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시간을 보내는 게 그리 나쁘진 않지만, 낮은 주방에서 그 시간 동안 요리를 하니 허리가 아프다. 아직 칼질이 서툴러 채 써는 요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런 것도 기본이 있어야 할 텐데... 기본기가 없으면 뭐든 발전이 더디다. 돌아가면 요리는 꼭 배울 테다.

나에게 드립 커피 뽑는 법을 전수해줬던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한때 당구에 빠져서 매번 큐를 바라보고 있었더니 여자친구가 90만 원 짜리(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꽤 비싸다고 느꼈었다) 개인 큐를 사줬어. 처음엔 좋아 라고 열심히 가지고 놀았는데 여자친구가 당구를 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전문선수도 아니고 무슨 개인 큐냐 싶더라. 팔아 치웠지. 드립 커피 뽑아먹는 취미를 가지니깐 이런 게 좋은 취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취미라는 걸 가져야 한다면 다른 사람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취미가 좋지 않을까 싶은 거지."

물론 그게 취미의 기준이 될 순 없겠지만 그런 효과는 충분히 긍정적이긴 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요리는 정말 좋은 취미가 될 수 있다. 요리라는 건 언제나 누군가를 위한 것이니까. 물론 혼자 먹기 위해 요리할 수도 있지만

"요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지요. 어쩌면 다른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사랑의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나 혼자 먹겠다고 싱크대 옆에서 바다가재 수플레를 만드는 내 자신의 모습이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든 연인이든 자식이든 친구든, 다른 사람이 등장해야 상을 펴고 음식을 놓고 와인을 따고 하는 것이지요."

라고 유명한 프랑스 요리사 자끄 뻬뼁이 말한 것처럼 자기만 먹기 위해 하는 요리는 정성을 들이면 들일수록 왠지 쓸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이를 위한 삶은 살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요리는 적어도 내 가족이나 지인들을 대상으로 할 테니 삶의 기조에서 벗어난다고 볼 수 없다. 하여간 이렇게 재료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요리에 흥미가 생기는 것 보면 돌아가선 더 열심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