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42. 운수 나쁜 날 (10월23일 am9:30 ~ 10월24일 am1:30)
2010. 11. 16. 22:10 |일찍 일어나서 우체국으로 향한다. 어제 집 근처까지 바로 버스를 타고 와서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탄다. GPS로 버스가 움직이고 있는 방향을 체크해보니 버스가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내린다. 사람들이 알려준 다른 버스를 탔는데 어느 정도 가다가 또 방향이 바뀐다. 다시 내린다. 사람들 말이 다 제 각각이다. 그런 식으로 네 번 버스를 갈아타고 우체국에 도착한다. 다행인건 인도 버스는 돈을 받는 아저씨가 가는 곳을 묻고 즉석에서 표를 끊어주는데, 버스가 가지 않는 곳을 말하면 요금을 받지 않는다. 버스를 네 번 갈아 탔지만 요금은 한 번만 냈다. 이게 오늘의 마지막 행운이었다.
우체국에 가서 소포 번호를 내민다. 세 사람을 거쳐 우리의 번호를 받아 든 아저씨는 무슨 경위서 같은 걸 작성하라고 흰 종이를 주고 사라진다. 뭘 쓰라는 얘긴지 모르겠다. 대충 ‘내 소포 줘요.’라는 식으로 써놓고 기다리는데 담당자 아저씨가 오지 않는다. 지금 이곳에선 두 아저씨가 책상에 앉아 멍 때리고 있고, 한 명이 구석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고, 가운데서 세 명이 일일이 소포를 뜯어보고 물품을 체크하고 있다. 그러니까 상황을 미루어보면 모든 소포가 이 곳에 오는 게 아니라 관세를 물만한 비싼 물건, 혹은 규정에 어긋나는 물건이 있을 법한 소포들을 모아 검사하는 곳 같다. 한참을 기다리니 나를 부른다. 누나가 보낸 소포가 앞에 놓여있다.
“여기 뭐 들어있어?”
“안경하고 먹을 거요.”
“알았어 가봐.” 하고 소포를 뒤로 던진다.
“줘요. 지금 가져갈게요.”
“안돼. 배달해 줄 테니까 집에서 기다려.”
“그냥 가져가면 안돼요. 일주일이나 기다렸다고요.”
“어. 안돼.”
분노 게이지 급상승. 이 소포는 지난주 토요일에 이곳에 도착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소포 숫자를 봤을 때, 좀 열심히 한다면 하루 만에 검사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일주일 동안 구석에 박아 놓고 찾으러 오니 이제 꺼내서 뜯어보지도 않고 배달해 줄 거라니. 왜 못 가져가게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화요일이나 수요일쯤에 도착할 거라 하는데 그 말 역시 믿음이 가질 않는다. 답답할 뿐이다. 하지만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돌아 나온다.
며칠 더 머물게 생겼으니 시장에 가서 장을 본다. 오늘따라 타고 가야 할 버스는 드럽게 안 오고, 이정표 없는 지하도에서 선택한 계단은 죄다 반대 방향이다. 가끔 이런 날이 있다.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운수 드럽게 없는 날.
집에 돌아와서 키산 아저씨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하니 괜찮다며 편히 쉬다 가라 한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잠시 후 덴마크에서 아저씨 하나가, 노르웨이에서 여자 둘이 온다. 새 손님들이다. 서로 인사를 한다. 모두들 저녁 먹으러 가는데 우리는 장 봐 놓은 음식이 있어 집에 머문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재빨리 닭고기를 삶아 먹는다. 맛있다. 이곳에 오래 머물면서 그리운 음식을 많이 해 먹었다. 당분간 음식에 대한 향수는 없을 듯하다. 일찍부터 돌아다녔더니 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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