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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일찍 일어나서 우체국으로 향한다. C 42-2어제 집 근처까지 바로 버스를 타고 와서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탄다. GPS로 버스가 움직이고 있는 방향을 체크해보니 버스가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내린다. 사람들이 알려준 다른 버스를 탔는데 어느 정도 가다가 또 방향이 바뀐다. 다시 내린다. 사람들 말이 다 제 각각이다. 그런 식으로 네 번 버스를 갈아타고 우체국에 도착한다. 다행인건 인도 버스는 돈을 받는 아저씨가 가는 곳을 묻고 즉석에서 표를 끊어주는데, 버스가 가지 않는 곳을 말하면 요금을 받지 않는다. 버스를 네 번 갈아 탔지만 요금은 한 번만 냈다. 이게 오늘의 마지막 행운이었다.

우체국에 가서 소포 번호를 내민다. 세 사람을 거쳐 우리의 번호를 받아 든 아저씨는 무슨 경위서 같은 걸 작성하라고 흰 종이를 주고 사라진다. 뭘 쓰라는 얘긴지 모르겠다. 대충 ‘내 소포 줘요.’라는 식으로 써놓고 기다리는데 담당자 아저씨가 오지 않는다. 지금 이곳에선 두 아저씨가 책상에 앉아 멍 때리고 있고, 한 명이 구석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고, 가운데서 세 명이 일일이 소포를 뜯어보고 물품을 체크하고 있다. 그러니까 상황을 미루어보면 모든 소포가 이 곳에 오는 게 아니라 관세를 물만한 비싼 물건, 혹은 규정에 어긋나는 물건이 있을 법한 소포들을 모아 검사하는 곳 같다. 한참을 기다리니 나를 부른다. 누나가 보낸 소포가 앞에 놓여있다.

“여기 뭐 들어있어?”
“안경하고 먹을 거요.”
“알았어 가봐.” 하고 소포를 뒤로 던진다.
“줘요. 지금 가져갈게요.”
“안돼. 배달해 줄 테니까 집에서 기다려.”
“그냥 가져가면 안돼요. 일주일이나 기다렸다고요.”
“어. 안돼.”

분노 게이지 급상승. 이 소포는 지난주 토요일에 이곳에 도착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소포 숫자를 봤을 때, 좀 열심히 한다면 하루 만에 검사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일주일 동안 구석에 박아 놓고 찾으러 오니 이제 꺼내서 뜯어보지도 않고 배달해 줄 거라니. 왜 못 가져가게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화요일이나 수요일쯤에 도착할 거라 하는데 그 말 역시 믿음이 가질 않는다. 답답할 뿐이다. 하지만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돌아 나온다.

며칠 더 머물게 생겼으니 시장에 가서 장을 본다. 오늘따라 타고 가야 할 버스는 드럽게 안 오고, 이정표 없는 지하도에서 선택한 계단은 죄다 반대 방향이다. C 42-3가끔 이런 날이 있다.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운수 드럽게 없는 날. C 42-4

집에 돌아와서 키산 아저씨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하니 괜찮다며 편히 쉬다 가라 한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잠시 후 덴마크에서 아저씨 하나가, 노르웨이에서 여자 둘이 온다. 새 손님들이다. 서로 인사를 한다. 모두들 저녁 먹으러 가는데 우리는 장 봐 놓은 음식이 있어 집에 머문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재빨리 닭고기를 삶아 먹는다. 맛있다. 이곳에 오래 머물면서 그리운 음식을 많이 해 먹었다. 당분간 음식에 대한 향수는 없을 듯하다. 일찍부터 돌아다녔더니 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