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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일어나서 동네구경을 하러 장비를 챙기려 하는데 캠코더가 없다. 이것 저것 살펴보니 재상이의 노트북도 업다. 어제 새벽 3시 자기 전까지 있었던 것들이다. 아침에 누가 가져간 것이다. ‘아침에 누가 들어왔나…’ 난 반대방향으로 누워 있어서 보지 못했다. 우리가 자는 방 문은 크게 열면 심한 삐거덕 소리가 난다. 방에 들어온 사람은 한 명, 방 주인 라훌 뿐이다. 적어도 우리가 확인한 사람은 그 뿐이다. 그는 우리가 늦게까지 잘 때 아침에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거나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곤 했다. 근데 오늘은 서너 차례 들락거렸다. 항상 그래왔어서 비몽사몽간에 그가 왔다 간 것만 확인했다. 일어났을 땐 라훌이 없다. 피제이에게 말한다. “캠코더랑 랩탑이 없어졌다.”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 피제이는 라훌에게 전화를 한다. 한 시간 뒤에 집에 온다고 한다. 밥을 먹으러 간다.

라훌이 모인 자리. 라훌이 부정을 한다. 이때부터 모든 게 끝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여행자 신분. 어차피 얼마 뒤 떠나야 한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 99%인 사람이 발뺌을 하면 경찰이 와도 방법이 없다. 세 사람이 꽉 차게 자야 하는 좁은 방.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았고, 들어올 수도 없다. 하지만 물증 없이 몰아붙일 순 없다. 그것도 우리에게 자기 방을 내준 사람에게… 피제이는 나름 방법을 생각해보고 이 상황에 대해 해결해 보려 하지만 물건을 찾지 못하면 어떤 방법도 무용지물이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생길 거라 생각해서 난 그냥 덤덤하다. 그 동안 찍은 비디오 소스도 어제 노트북에 옮겨놔서 그리 심각하진 않다. 재상이는 여행 중 남긴 모든 게 담긴 노트북이 없어졌으니 상실감이 클 거다. 이미 자전거도 두 번이나 잃어버렸으니 더 하다. 하지만 방법은 없다.

모든 문제를 그냥 받아들이기로 하고 다음 루트를 생각하고 있는데, 재상이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모든 게 지겨워진 듯 하다. 우리는 뭄바이 아래쪽에 있는 친구 동생 일터에 가서 스폰서를 더 알아보고 안 되면 유럽으로 바로 날라가서 일자리를 알아보기로 한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예산이었기 때문에 캠코더를 다시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이다. 방법은 스폰서를 더 알아보는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곳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정리 됐지만 더 이상 이 집에서 머물긴 힘들다. 하필 인도에서 제일 큰 연휴기간이라 라훌도 집에 내려간다. 피제이는 자기 집에서 그런 불상사가 발생한 게 깨름직한 듯하다. 그가 다른 곳으로 옮기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따라 나서니 한 게스트 하우스에 데려다 준다. 오늘 방값은 자기가 계산해 주겠다 한다. 이렇게 우리는 새 잠자리를 찝찝하게 얻는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일기장을 놓고 왔다. 라훌은 이미 집으로 갔으니 찾을 길이 없다. 캠코더가 도둑 맞은 것에 무덤덤해하고 있었지만 일기장 마저 일어버리니 짜증이 머리끝까지 밀려온다. 글에는 표현이 안 되지만 무지하게 길고 짜증나는 날이다. 속이나 풀 겸 맥주를 마신다. 모두들 오늘의 상황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다. 모든 건 지나간 일. 돌이킬 수 없다. 다음을 생각하자.

고민 끝에 계획을 바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짐은 친구 동생에게 맡겨놓고 돌아가서 다시 온다. 어차피 스폰서를 못 구하면 여행을 계속할 수 없다. 유럽으로 가서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 보다 한국에 돌아가서 적극적으로 스폰서를 알아보는 게 나을 듯 싶다. 슬슬 여행이 지겨워지기도 했고, 더욱 큰 건 한국에 가면 파키스탄 비자를 받을 수 있다.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타향살이란 이런 것이구나.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행복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국에 돌아가게 될진 몰랐다. 하지만 절대! 여행이 여기서 끝난 건 아니다. 좀 더 업그레이드 해서 올뿐이다.

좋은 스폰서가 잡히기를… 그리고 그리운 모두를 안을 수 있기를… 이 모든 게 전화위복이 되기를…